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바람부는 계절/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바람부는 계절/김병주 서강대 교수·경제학(화요세평)

입력
1998.03.17 00:00
0 0

가는 겨울의 긴 옷자락이 대지를 스치는 요즘 꽃망울 터짐이 주춤거린다. 차가운 바람결에 눈송이마저 흩날리기도 한다. 그러나 손바닥만한 앞뜰에 이미 봄이 와 있음을 본다. 그리고 며칠 뒤엔 꽃잎을 휘날리는 바람이 일고, 다시 몇주일 뒤에는 민들레 꽃씨들이 하얀 낙하산을 타고 출진하는 모습을 관찰하게 될 모양이다. 바람은 온갖 것을 다 실어 나른다. 해마다 봄철이면 중국 서북부 황량한 고원의 메마른 땅에서 인 바람은 황색 모래를 실어 한반도 하늘을 가리고 대기를 혼탁시킨다. 각별히 몸조심할 계절이다.미국 중부지방에 발생하는 거대한 깔때기 모양의 선풍, 토네이도의 엄청난 파괴력은 이따금 TV화면을 통해 봐도 공포심을 자아낸다. 문학작품에서 유명한 바람은 대평원지대(Dust Bowl)의 긴 가뭄속에 불어닥친 흙먼지 바람이다. 옥수수농사가 절단났다. 대기는 흙먼지가 절반이어서 단단히 틀어막은 창문틈을 헤집고 들어와 가구위에 뽀얗게 내려앉는다. 견디다 못해 서부로 정처없이 유랑의 길을 떠나는 톰 조드일가를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는 묘사한다.

농사 망치는 것이 어찌 흙모래 뿐이랴. 펄 벅의 「대지」에서 왕룽가족은 어느날 남쪽 하늘에서 조그마한 구름조각이 떠오는 것을 근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처음에 그것은 안개같이 뽀얗게 지평선 한쪽에 나타났다가 차차 부챗살같이 퍼지기 시작했다. 계속 하늘 가득히 퍼지며 대지를 뒤덮으며 다가온 것은 메뚜기 떼였다. 곧 하늘이 캄캄해졌다. 메뚜기 떼가 내려앉은 곳은 삽시간에 황무지로 변했다. 사람들은 도리깨로, 불로, 물로 맞서 싸웠다.

요즘 한국사회에는 자연의 계절과 다른 바람이 거세다. 이른바 북풍공작문제로 정계가 어수선하다. 총리인준 여부로 국회가 시끌벅적하다. 그러나 대다수 국민은 IMF 한파에 몸을 떨다보니 정계의 소란에는 무관심하다. 당장 내 직장이 어찌될까 밥그릇 걱정이 앞선다.

정치보다 경제를 우선해야 나라를 살릴 수 있는 절체절명의 궁지에서도 한국의 정계는 여야 모두 힘겨루기에 나날을 보낸다. 올해 경제성장률이 ­3∼­5%를 기록할 가능성이 짙다. 잇따른 도산, 늘어나는 실업, 이에 따른 안정세력의 붕괴우려, 모든게 걱정이다.

IMF 한파가 드센 험난한 계곡을 벗어나는 지름길은 국제사회 신용회복이다. 지난날 개방화 이전에는 국제사회의 이목을 무시하고 우리끼리의 파당놀이도 무방했다. 개방화시대 이후, 특히 구제금융시대에는 정부구성과 정책노선 하나하나에 외국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이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것으로 의심받는 일은 없는가.

5년마다 휘몰아 닥치는 자리갈이 바람은 가뜩이나 움츠러든 일터 분위기를 더욱 경색시킨다. 요행히도 좋은 전답의 피해를 모면한 왕룽의 경우와 달리 우리의 공직사회는 좋은 자리부터 물갈이된다. 차례로 국영기업체나 정부 영향 아래 있는 기관들의 자리도 낙하산부대에 탈취된다. 공공 민간부문 모두 나름나름으로 줄을 대어 인사바람이 인다.

지구의 자전이 계속되는 한 바람은 불가피하다. 바람은 계절을 따라 비구름을 몰고와 마른 대지를 흥건히 적시어 풍요로운 결실을 준비한다. 선거가 있는 한 5년마다 큰 바람이 일게 마련이다. 나라살림을 가멸하게 할 순풍일지 메말리는 역풍일지 그것이 문제로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