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관과 검찰,경찰,군대와 같은 국가통치기구는 사회통합을 목적으로 정치권력이 이용하는 「최후의 수단」이다. 이를 최선의 수단으로 여기고 효율적인 통제와 활용 여부에 따라 정치안정도가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그 국가는 민주적이라 할 수 없다. 한국정치가 후진성을 벗어났다고 평가하기 어려운 것은 정치현실에서 이같은 기구의 존재가 여전히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제2공화국 장면정권은 한국정치사에서 국가통치기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권력을 잃어버린 대표적 경우로 꼽힌다. 4·19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장면은 자유당 독재를 지탱해 주었던 경찰과 군대 등에 대한 「정화작업」을 벌이다 도리어 통치기반의 몰락을 가져왔다. 가령 경관 4,500여명을 숙청하고 나니 반국가적 활동에 대한 정보수집 기능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문민정부의 김영삼 전 대통령도 통치기구의 유용성을 지나치게 무시하다 권력유지에 곤경을 겪었다는 평을 들었다. 집권 초기 안기부 등에 대한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가 결국 『정보기관을 소홀히하는 바람에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했다』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부도덕한 권력기구는 정리해야 한다는 명분과 정치현실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실감케 해주는 사례들이다.
두 지도자의 실패는 폭력수단을 가진 통치기구를 다룰 때는 대단히 정교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정치투쟁과 갈등을 의회나 정당 등 공개적이고 민주적 과정을 통해 소화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한계는 물론 그 기구 자체의 「존속력」을 깊이 유념해야 했던 것이다. 이들의 좌절을 통해 이 사회에는 통치기구들이 거대한 정치세력으로 온존하도록 하는 부패한 토양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각종 통치기구로 철저한 통제를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노련한 통치자로 평가되는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안기부,군,검·경 등의 개편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든 국민이든 권력 게임의 관점에서 통치기구 개혁에 집착과 관심을 보이는 것은 통치기구가 존재하는 정치적 당위성을 더 부각시켜 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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