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타계한 인지 고흥문 전 국회부의장은 63년 6대 국회때 정계에 입문한 후 80년 신군부의 정치활동 규제로 정치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야당의 외길을 걸어온 정계원로이다.유석 조병옥 박사와의 인연으로 정치를 시작한 그는 6대에서 10대 국회까지 내리 5선의원을 지냈고 신민당 사무총장과 부총재, 최고위원 등을 역임했다. 67년 박정희 대통령이 3선개헌을 강행하자 『이 땅에 민주정치는 사라졌다』며 골프장에 발을 끊은 이래 타계하기까지 골프채를 잡지않는 강기를 보였다.
정계 은퇴후에는 정치적 고비때마다 정치권으로부터 숱한 영입교섭을 받았으나 모두 거절하고 정계원로로서의 역할과 집필활동에 몰두했다. 84년말 해금후 야권에서 그를 신당총재로 추대하려 했으나 『통합야당이라면 몰라도 다당제는 집권세력만을 유리하게 할 뿐』이라며 고사했고, 88년 13대 총선을 전후해 여권이 국무총리 등을 제의했지만 이 역시 『나의 꿈은 야당의 집권』이라며 사양했다. 『썩은 준치보다는 산 동태가 되고자 했다』는 그의 변은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9월 희수를 맞아 신문에 기고한 칼럼과 대담내용을 모은 정치평론집 「대화의 정치, 화합의 정치」를 펴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고인은 매일 새벽에 등산을 하고 독서도 게을리하지 않는등 빈틈없는 노후생활을 보냈다.<유성식 기자>유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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