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깎는 개혁만이 살길”/영 10년 지나도 환란후유증 멕시코는 아직 먼길/“고통도 희망도 이제 시작” 우리 하기에 달렸다국제통화기금(IMF) 체제가 시작된지도 벌써 100일이 넘었다. 그동안 우리 경제는 6·25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가까스로 넘기며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환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채 대량부도 대량실업등 환란의 후유증은 막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국난을 어떻게 넘기느냐에 따라 우리의 21세기가 규정된다. 국난을 슬기롭게 이길 수 있는 지혜를 모아 시리즈로 엮는다.<편집자주>편집자주>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경제가 앞으로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솔직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와 개혁의 속도를 높이는 것입니다』 전임자에게서 텅빈 금고와 엄청난 빚문서만을 넘겨받은 에르네스토 세디요 멕시코 대통령.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구제자금을 받은지 두달째인 95년 4월 국민들에게 고통의 감내를 호소했다.
「IMF 체제」로 접어든지 100일이 넘어선 우리의 상황 역시 다를 바 없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모(40·서울 강동구 고덕동)씨 다가구주택엔 다섯가구가 산다. 지난주 보험회사에 다니던 한 가장이 이집에서 세번째로 실직했다. 실직은 이제 일상처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다. 「1년 반이면 환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말이 희망섞인 의지일 수밖에 없다.
환란을 당했던 다른나라들의 예가 증명한다. 76년 IMF 구제자금을 받았던 영국은 이를 1년반만에 조기상환했다. 하지만 대량실업과 고물가, 경상수지적자에서 벗어나는데는 그로부터도 10여년이 필요했다. 영국은 그나마 75년부터 생산이 시작된 포티스유정등 북해 유전이 본격가동되면서 국난극복의 시간을 단축했다. 그럼에도 영국은 환란의 후유증으로 아직까지 유럽의 이류국가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 외환위기를 당했던 멕시코도 마찬가지이다. 환란을 겪은지 벌써 5년 가까이 지났지만 80년의 절반수준으로 떨어진 실질임금의 원상 회복은 요원하다. 피부물가와 실질금리는 여전히 20∼30%대를 오르내린다. 절반이상의 제조업이 아직 가동되지 않고 있고 쓸만한 주요기업들은 대부분 외국자본에 넘어갔다.<김준형 기자>김준형>
우리가 맞고 있는 IMF 국난은 이제 「시작의 시작」일 뿐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도 쉽게 위기를 잊은 채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 골프장 주말부킹이 다시 힘들어지고 수도권 인근의 Y골프장 등에서는 휘황찬란한 조명을 밝힌 야간골프까지 재등장했다. 국난극복을 위해서도 고용과 생산증대 효과가 있는 건전소비는 적극 장려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새 과소비풍조가 다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문제다. 재벌과 정치권, 금융계의 나사는 더욱 심하게 풀렸다. 재벌들은 끌려가는 소처럼 발을 버틴 채 변화를 지연시키려 하고 있다. 정치권은 새정권 첫 총리인준문제조차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는 외부의 시선은 날카롭다. 조지 소로스 퀀텀펀드 회장은 최근 주한 외국인 금융기관 대표들이 참석한 만찬에서 『새정권 초반기에 개혁의 틀이 마련되지 않으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제 다시 한번 흐트러진 신발끈을 매고 변화를 향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보다 앞서 비슷한 길을 갔던 나라들도 변화를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추진했을 때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80년 들어 평균성장률이 0.6%로 줄고 실업률은 8.7%로 늘어났던 덴마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상식」을 과감히 버렸다. 정치적 위험을 무릅쓰고 성역처럼 여겼던 사회보장비와 공무원조직을 과감히 감축했다. 그 결과 94년이후 성장률이 연 3%대로 높아지고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서 이전보다 훨씬 강한 경제를 이룩했다. 80년대초 위기를 겪은 뉴질랜드도 84년이후 금융 재정 산업 등 전반에 걸쳐 구조개혁을 추진, 이젠 가장 모범적인 경제운용국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스티븐 브라운 주한 영국대사는 지난해말 한 강연회에서 영국의 위기극복과정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을 맺었다. 『IMF이후에도 삶은 있다(There is life after the IMF)』 하지만 고통에 대한 인내와 변화를 향한 의지가 전제돼야 한다. 고통도 희망도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는 각오를 다져야한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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