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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남성의존시대 끝내자”/이희호 대통령 부인(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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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남성의존시대 끝내자”/이희호 대통령 부인(특별기고)

입력
1998.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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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발전은 평등한 참여로 가능/정치 적극참여 ‘남주주의’ 타파를김대중 대통령부인 이희호 여사가 한국일보의 전면 가로쓰기체제 전환을 기념해 여성과 정치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대통령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신문칼럼을 쓴 이여사는 평소 생각해온 여성의 정치참여에 관한 소신을 밝혔다.<편집자주>

21세기는 「여성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여성의 참여 없이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여성에 대해 차별적인 제도와 관념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성은 이 사회와 나아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여성단체들이 작년 대통령 선거를 우리 사회를 개혁해 나가는 전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한국여성유권자연맹은 「여성유권자 주인되기」와 「지역을 넘어 하나되기 운동」을 펼쳤습니다. 그것은 여성들이 사회변혁의 지렛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이었으며,선거혁명을 여성의 힘으로 성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정치는 남성들만의 영역이라는 고정관념이 지배했습니다. 또한 남성우위의 가부장적 문화의 영향으로 여성과 정치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여성들의 주체적인 투표권 행사를 소홀히 여겨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정치란 우리의 삶과 연관되지 않는 것이 없을 만큼 바로 우리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입니다. 여성이 정치를 멀리 한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삶의 조건을 자기가 만드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유엔기구의 조사보고서가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남녀평등지수인 평균수명,문자해독률,취학률,남녀소득차를 측정 비교한 「97년도 인간개발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순위는 175개국중 32위입니다. 남녀소득차로만 보면 그 간격이 더욱 벌어져 146개국중 35위로 낮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조사에서,각 나라 여성들이 정치경제활동과 정책결정과정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지를 알아보는 「여성의 권한척도」를 보면 우리나라는 94개국중 73위로 아주 뒤처져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여성의 의회진출과 고급공직에의 진출이 저조한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한 나라의 발전상을 여성의 지위로 평가하는 오늘의 국제적 분위기에 비춰보면,우리의 실상은 시급히 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불평등한 것은 비단 우리만의 것이 아닌 세계적인 현상이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이미 상당부분 극복한 부분이 우리에게는 아직 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행히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서서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보다 급속하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성 자신들의 정치의식과 인간으로서의 권리의식이 전환된 데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날 전지구적으로 직면하고 있는 인간생존의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인간의 존재양식에 일대변혁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인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 모두의 평등한 참여 없이는 지속적인 사회발전이 불가능하다는 인식의 전환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특히 21세기가 직면하고 있는 지구환경위기를 극복하고 지속가능한 공동체 사회를 건설하는 원동력은 바로 여성이라는 것입니다.

여성들은 지금까지 여성들의 문제해결과 요구사항을 남성들의 선심에 의존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여성들은 여성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에 눈을 크게 떴습니다. 그래서 더러는 각급 의회진출로 더러는 각급 공직진출에, 그리고 다수의 여성들은 여성운동체를 통해 집단적인 의사표시와 여성의 정치세력화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분야에 따라서는 민주주의에 반하는 남주주의를 타파하는 물꼬를 튼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여성의 평등한 참여를 통한 인간공동체의 건설에는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심각한 남녀 성비 불균형이 초래하고 있는 사회문제를 비롯하여 사회 각계각층에서 남녀를 차별하고 구분하는 분리주의적 관행들이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권리가 차별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하는 법이 바로 가족법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용과 승진에서의 남녀차별은 관례처럼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 89년 37년간의 우여곡절끝에 가족법이 개정되어 어머니가 아버지와 같은 권리를 누리고, 아내가 남편과 그리고 딸들이 아들들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 있는 기초가 마련되었습니다. 미흡하지만 직장에서 남녀가 평등한 처우를 받을 수 있는 남녀고용평등법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원하는 정치는 우리의 삶의 조건을 물질 위주가 아닌 보다 인간적인 바탕에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여성이 자신의 삶의 조건을 스스로가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여성의 삶의 조건을 남성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끝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정부의 정책적인 노력이 뒷받침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 신임 대통령은 분명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번 새정부의 인사에 있어서도 여성을 한 사람이라도 더 기용하기 위해 고심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집 대문에는 결혼 후 줄곧 부부의 문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는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는 당신에게」라고 편지를 쓰는데도 주저하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 왔던 남성 중심적 사고, 강자 중심적 사고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억압과 지배, 자연에 대한 착취를 종식시키고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평화로운 공존의 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음 세기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해야 하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지방자치의 시대,교육자치의 시대를 맞아 보다 많은 여성들이 이 기회를 이용하여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고 밝게 만들어 나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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