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이 나라이름은 바뀌어도 중국천하를 계속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제도 덕분이라는 말이 있다. 우수한 공직자를 학연 지연에 지배되지 않고 실력으로 뽑아 씀으로써 한족이 창안한 정부조직은 변방의 다른 민족을 제압할, 질적인 차별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587년 수나라가 창시한 과거제도는 그래서 중화 영향권에 있는 베트남까지도 퍼져갔다. 우리나라가 과거제도를 받아들인 것은 고려때인 958년이었고 조선시대에도 기본원칙은 거의 계승되었다. 고려나 조선이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면 과거제도도 흔들렸는데 그 방안이 음서제도였다. 특권신분층인 공신 양반등의 신분을 우대하고 유지하기 위해 그 후손을 관리로 기용한 음서제도는 국가조직이 건실한 초기에는 별 힘을 못써서 수혜대상이 되어도 유능한 자는 과거시험을 쳤다. 반면 말기에는 기승을 부려 통치체계를 흔들어놓았다.
최근 정부조직 개편으로 정무2장관실 대신 탄생한 여성특별위원회는 바로 이런 특권층을 위한 음서제도를 강화할 소지를 안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2월말에 공포된 여성특별위원회에 관한 대통령령은 행정 실무를 담당할 공무원 정원 41명 가운데 18명을 별정직으로 기용할 수 있다고 규정, 실무직원 대부분을 외부에서 끌어올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더구나 이들 전부가 5급 이상 관리로, 여성문제를 빌미로 외부에서 고급공무원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린 셈이다. 5급 이상이 22명(위원장 제외)인데 18명이면 81.8%다. 문제는 이같은 신종 음서제의 강화가 여성특별위원회에 집중되었다는 데 있다.
같은 위상의 기획예산위원회는 공무원 99명 가운데 별정직이 가능한 것은 4자리 뿐이다. 이때문에 가장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행정고시나 기타 공무원 채용에 대한 정당한 절차를 치르고 공무원이 된 이들이다. 그래서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여성이라고 차별받던 데서 나아가 여성정책을 담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 시기가 왔다는 자조적인 표현까지 나오고 있다.
물론 현재의 공무원 채용방식이 절대적으로 옳으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외부인사가 들어가 조직이 생기를 띨 수도 있다. 그래서 별정직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한 조직의 지휘체계 전체를 흔들어 놓을만한 이런 변화라면 공무원 채용방식을 전면 재검토한 후에 나와야 할 것이다.
만에 하나, 특정 정당이나 학연 지연에 얽혀 고급 공무원이 될 수 있다면 공무원의 정치중립성은 무슨 의미가 있으며 공무원 노조를 반대할 근거는 무엇인가. 공무원 채용 제도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여성비율을 늘리기 위해 여성채용 목표제를 준수하려 한 것이 엊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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