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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L/록의 유혹에 다시 뭉친 불혹의 로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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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LL/록의 유혹에 다시 뭉친 불혹의 로커들

입력
199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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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테트라·옥슨80·로커스트·라이너스…/대학 그룹사운드 전성기를 이끌던 이들이 접었던 꿈을 찾아 20년만에 악기를 잡았다/BOLL은 왕년에…70년대말 80년대초 가요계는 대학 그룹사운드의 전성기였다. MBC 대학가요제와 TBC 젊은이의 가요제는 대학 그룹사운드의 산실 역할을 했다. BOLL의 멤버들이 활동했던 블랙 테트라와 옥슨80, 로커스트, 라이너스는 모두 TBC 젊은이의 가요제 출신. MBC 대학가요제 출신의 샌드 페볼스(서울대), 활주로(항공대) 등과 함께 대학가의 록을 주도했다.

79년 제2회 젊은이의 가요제에서는 연·고대 혼성의 라이너스가 「연」으로 우수상, 홍익대 블랙 테트라(3기)가 「심메마니」로 인기상을 수상했다. 블랙 테트라의 고상록은 이 노래로 작곡상도 받았다. 방송 통폐합으로 마지막이 된 이듬해 대회에서는 연·고대와 덕성여대 혼성 5인조 로커스트가 「하늘색 꿈」으로 대상을 차지했다. 이 곡은 요즘 신인여가수 박지윤이 리메이크해 또다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건국대 옥슨80의 「불놀이야」는 금상을 수상했다.“

이 노래들은 당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발표된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요즘도 노래방에서 심심치 않게 불리는 변함없는 애창곡이다. 멜로디를 이끄는 일렉트릭 기타, 쿵쿵 대는 드럼과 베이스, 아기자기한 키보드 요즘 곡과 비교하면 그다지 빠르지도 자극적이지고 않지만 단순함과 소박함이 오히려 듣는 사람을 들뜨게 만든다. 젊은이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랫말 역시 언제 들어도 여전히 신이 난다. 모두 BOLL의 주요 레퍼토리다.

오랜만의 대학동창 모임처럼 그들의 연습실에는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돈다. 70년대 음악다방처럼 낡고 어두운 연습실. 묘한 설렘이 좁은 공간을 채운다. 근 20년만에 다시 잡는 기타와 드럼스틱이 아직도 손에 익지 않은지 누군가 또 실수를 하지만 뭐라는 사람은 없다. 모두의 얼굴에 가벼운 웃음이 스칠 뿐이다. 다시 만난지 7개월째. 1주일에 한 번 뿐인 연습이지만 이제는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마음을 읽는다.

70년대말 대학가 그룹사운드의 주역들이 다시 모여 그룹을 만들었다. BOLL. 각자가 몸 담았던 블랙 테트라와 옥슨 80, 로커스트, 라이너스의 머릿글자를 따 이름을 지었다. 고상록(기타) 이홍원(드럼·이상 블랙 테트라), 홍서범(키보드·옥슨 80), 한태준(기타·로커스트), 문영삼(베이스) 최광수(기타·이상 라이너스) 모두 여섯이다. 결성 두달만에 홍대 앞 라이브클럽에서 첫 무대를 가진 이래 요즘은 방송출연과 공연으로 제법 바쁘다.

그러나 이들은 더 이상 그때의 젊은이가 아니다. 여섯명 중 다섯이 77학번 동기, 막내 한태준만 78학번이다. 다들 마흔을 넘겼다. 저마다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았다. DJ겸 가수 홍서범과 작곡가 고상록만 음악을 계속했을 뿐 이홍원과 문영삼은 무역업체와 중소기업체 대표, 최광수는 건축사, 한태준은 대학(중앙대 국제대학원)교수다. 방송출연금지를 받았을 만큼 길었던 머리는 단정하게 깎았고 듬성듬성 흰 머리도 보인다. 몇명은 아랫배도 나오기 시작했다. 청바지보다는 양복이 더 잘 어울리는 그야말로 중년의 아저씨들이다.

이들을 다시 모이게 한 건 역시 음악이다. 대학졸업 후 각자 다른 길을 가면서도 예전처럼 뜻맞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그건 그저 아름다웠던 20대를 추억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들에게 음악은 청춘의 발산이기도 하지만 타의에 의해 접어야 했던 꿈이기도 하다.

문영삼은 『그때 우리 또래의 대학그룹들은 60, 70년대 이래 선배들이 받아들인 외국 록음악의 한국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군부가 들어섰고 국풍81 이후 대학가의 록은 완전히 힘을 잃고 말았죠』라고 회고한다. 이들 역시 80년의 아픔을 간직한 세대인 셈이다. 그 꿈을 다시 이루는데는 2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다. 지난해 한 모임에서 누군가 그룹을 다시 해보자는 말을 꺼냈고 시간과 열의가 있는 여섯명이 모였다.

홍서범의 스튜디오에서 첫 연습을 하던 날, 이들은 여러번 웃어야 했다. 처음엔 변해버린 서로의 겉모습이 어색해서, 그 다음엔 기타줄도 제대로 못 맞출 정도로 녹슨 실력과 아무리 애써도 올라가지 않는 목소리가 한심해서 웃음이 났다. 마지막엔 음악을 다시 하고 있다는 사실이 즐겁고 행복해서였다.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습은 새벽까지 이어졌다.

요즘도 연습은 매번 자정을 넘긴다. 차츰 옛 실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예전엔 연습을 핑계로 수업을 빼먹기도 했지만 이제는 빠듯한 자기시간을 쪼개 연습한다. 좋아하던 술 약속도 다들 줄였다. 말 안들으면 기합주던 선배도 없는데 틈날 때마다 개인연습도 한다. 무거운 20년전의 기타대신 아예 새로 장만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힘든 줄을 모른다. 모두 살 맛이 난다고 한다. 얼마전엔 「하늘색 꿈」을 불렀던 로커스트의 여성멤버 김태민의 소식을 십몇년만에 다시 들었다. 놀랍게도 그의 딸은 한태준의 딸과 초등학교 같은 반이었다. 친구에게 아빠의 음악활동을 자랑한 딸 덕분이었다. 또 한번 기쁘고 반가웠다.

BOLL의 멤버들은 그들의 음악을 동세대와 함께 나누고 싶어한다. 그때 노래들을 다시 불러 사람들이 잊고 지내는 20대의 꿈을 기억하게 하고, 뒤늦게나마 다시 시작한 그들처럼 힘내라고 격려해 주고 싶어 한다. 요즘 같은 IMF시대에 또래의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과 용기임을 스스로 겪어 알고 있다. 그들을 원하는 30, 40대 팬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무료로 달려가겠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시 시작하기가 어렵지 이제는 언제까지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이들은 이왕 다시 시작한 음악을 제대로 해보겠다고 벼른다. 곧 단독공연은 물론이고 새 노래들로 음반도 낼 계획이다. 음악감독격인 홍서범은 『요즘 분위기를 얼마간 고려는 하겠지만 서정적이면서도 서사적이었던 예전 우리의 록음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아직도 록을 즐겨 듣고 젊음과 반항이라는 록의 정신을 지지한다. 그 용기와 열정이 중년 고개에 접어든 이들을 여전히 「젊은이」로 보이게 만드는 비결인지도 모른다.<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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