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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인」의 넋두리/이병일 수석논설위원(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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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노인」의 넋두리/이병일 수석논설위원(메아리)

입력
199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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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낮 12시 서울 P호텔 뷔페식당. 57세에서 59세까지의 「젊은 노인」 5명이 자리를 같이했다. 모두 젊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늙지도 않은 「샌드위치세대」다. 같은 직종의 일을 하다가 만난 동료 선후배 사이로 30년 가까이 친교를 맺어왔다. 정년을 맞아 일찍 직장을 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IMF 시대를 맞아 최근 직장을 그만둔 사람도 있고 나머지도 퇴직을 눈앞에 두고 있다.점심시간인데도 몇달 전만 해도 상당히 붐볐을 식당안이 아주 조용했다. 손님이라곤 5명이 전부였다. 아무리 IMF 시대라 하지만 해도 너무했다. 「우리가 오지 않았으면 차라리 식당직원들이 휴식이나마 취할 수 있었을텐데…」하면서 한명이 직원들의 눈치를 살필 정도였다. 「건전한 소비는 조장해야 하는데 이러다가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는 나라 걱정이 뒤따랐다.

때가 때인 만큼 이들의 화제는 경제와 은퇴 후 시간 보내는 문제에 중심이 모아졌다. 「요즘같은 상황에서 50대 후반에도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은 치매증상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는 한사람의 자조섞인 말에 모두 맞장구를 쳤다. 젊은 사람도 대책없이 잘려나가는 판에 제정신 가지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 없는 씁쓸한 현실을 모두 한탄했다. 아이들도 다 키우고 직장도 대개 30년이상 근무했기 때문인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보다 후배들에게 미안함이 앞서 근무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직장에 매일 나갈 수 있다는 것은 커다란 축복이다」고 10일 전 직장에서 물러난 사람의 말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그동안 하루 쉬고 하루 노는 생활을 즐겼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매일 산에만 오를 수도 없다는 푸념이었다.

경제발전의 주역으로 정신없이 달려온 이들 세대는 점차 「뒷방 노인」으로 밀려가는 스스로의 모습을 인정하는데 커다란 고통이 따른다. 그렇다고 사회보장이 잘돼 노후생활을 즐길 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 국민연금조차 가입기간이 10년 안팎에 머물러 어정쩡한 신세다. 스스로가 국민연금의 토대를 마련했으면서도 스스로는 이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인 것이다.

요즘엔 이른 새벽에 잠이 깨어 괴롭다는 것이 이 세대의 공통된 호소다. 일본의 방송작가 에이 로쿠스케(영륙보)는 「대왕생」이란 저서에서 「노인들이 새벽 일찍 잠이 깨는 것은 잠잘 힘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 바 있다. 새벽 잠이 없어지는 것은 바로 나이들어 간다는 증거인데 50대 후반의 「젊은 노인」들은 이를 받아들이기엔 아쉬움이 너무 많다. 공자가 말한 이순(60세)을 눈앞에 두고 있다지만 수명이 대폭 늘어난 지금의 이순은 옛날의 불혹(40세)에 해당할 만큼 건강하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노라면 곱게 늙어간다는 것도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란 자각을 하게 된다. 「인생은 우리들이 무엇인가를 알기도 전에 반이 지난다」는 19세기 영국의 평론가 어네스트 헨리의 말처럼 인생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아 늙어간다는 것을 고통스럽게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지 모른다.

「50대 후반에 직장을 가진 사람은 치매증상이 있다」는 이 세대의 자조는 그만큼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IMF 실업자가 됐다는 반증이다. 노후보장도 없이 내몰린 샌드위치 세대의 허탈감과 분함이 이 말속에 전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아무리 봐도 노동자들만 고통을 당하는 것 같아 울화통이 터진다. 정부가 대규모 실업대책을 마련한다고 해도 자신들과 아무 관계없는 일처럼 들린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받고 태어난 것이 아닌데 우리 자신이 그렇게 만든다」는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에 저항감을 느끼는 것도 바로 이 세대다. 이때문인지 늙기를 거부하는 이들은 휴식을 갖지 않는 것 만큼 지나치게 휴식을 갖는 것도 똑같이 인간을 황폐하게 만든다며 기회만 있으면 모여 수근거리며 탈출구를 찾으려 몸부림을 친다. 부질없는 일일지 모르지만 이들에겐 이것이 후반인생의 출발이란 점에서 정부부터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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