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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주의의 정치세력화/함재봉 연세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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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주의의 정치세력화/함재봉 연세대 교수·정치학(한국논단)

입력
1998.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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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 유치만이 우리의 살길인데 배타적 태도 걸림돌 새로운 지도력 절실”우리는 근본적으로 변해야 한다. 이것은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과연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국제화 세계화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경제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직접 투자를 통해서 회사를 운영하고 한국 노동자들을 고용하고 부동산을 소유하도록 해야 한다. 외국인을 관광객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우리땅에 뿌리 내려서 우리하고 같이 일하고 세금내고 더불어서 살수 있게 되어야 한다. 홍콩이나 싱가포르, 뉴욕이나 런던같이 외국인이 아무런 거부감과 불편함 없이 우리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게 되어야 한다.

그저 국제화가 좋아서가 아니다. 물론 국제화와 세계화가 우리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할 것이다. 그러나 보다 현실적인 이유는 이 방법만이 우리가 당장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 기업을 값싸게 인수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하는 것은 대부분의 기업들이 안고있는 엄청난 부채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한국인들의 외국인들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겁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급속히 늘어날 실직자들을 구제해 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인 외국의 기업들은 한국시장 진출을 망설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사회에는 이러한 개방과 세계화에 대하여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저항하는 세력들도 만만치 않다. 우리사회가 외국인들에 대하여 배타적인 이유는 우선 일제 식민지 경험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외세란 곧 국권상실과 수탈, 약탈의 형태로밖에 경험한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재산과 땅을 외국인들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현대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설립을 인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아직도 외국의 군대가 서울 한복판을 차지하고 주둔하고 있다는 사실도 그 필요성과 당위성 여부를 떠나 늘 한국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다.

또 과거 우리의 경제체제도 이처럼 외국인과 외국의 것에 대하여 배타적인 태도를 갖게끔 만들었다. 오직 수출을 통해서 경제개발을 이룩하고자 고군분투하던 지난 30년동안 국산물품을 쓰는 것은 곧 애국이요, 외제물품을 쓰는 것은 매국이었다. 외화를 획득해서 국고를 튼튼히하고 우리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 주는 것이 우리가 잘 살 수 있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대는 은연중에 외국에 대하여 배타적인 정서를 우리사회에 심어 주었다. 여기에다 80년대 많은 지식인과 학생들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외세의 개입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일제강점과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지속되는 남북한간의 대립은 모두 외세의 힘에 의해서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 결과 한국인들은 그 어느 민족보다도 폐쇄적인 사회를 건설하여 왔다. 좋게 말해서 동질성을 간직하고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있다지만 외국인에 대하여서는 더 할 수 없이 배타적인 사회이다. 그런데 이제 이러한 역사를 통하여 형성된 우리의 사회구조와 의식구조가 과연 변할 수 있을까?

문제는 현재 우리 사회에는 이러한 변화를 추구하고 주도할 만한 정치세력이 부재한다는 사실이다. 정치권을 보거나 기업 노동자 중산층 어디를 보더라도 개방과 국제화 세계화를 추진할 세력은 없다. 그것은 자신들의 이권이 개방화와 국제화와 직결되어 있는 계층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우리 사회의 모든 계층들이 세계화를 통하여 당장 손해를 보면 봤지 이득을 볼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그런데 누군가가 물꼬를 터야 한다. 누군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바로 여기에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새로운 정치력과 지도력이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개방화와 국제화 세계화만이 우리의 살길이고 그것이 궁극적으로 우리를 보다 부강하게 하고 우리의 삶에 다양성을 주며 문화적으로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갖고 이를 위한 개혁을 추진할 수 있는 사회기반과 정치세력이 하루 빨리 형성되어야 한다. 국제화 세계화하는 것이 가장 애국적이고 민족주의적이라는 이 시대의 역설 아닌 역설을 끌어안고 나아갈 정치세력의 출현이야말로 오늘날 한국정치의 최대의 숙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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