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적 형이상학 소설/문학사에 독특한 존재/“나는 소설가 아닌 법륜 굴리는 사람”『나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 아니고 법륜을 굴리는 사람입니다』 소설가 박상륭(58)씨가 캐나다에서 영구귀국했다. 69년 3월 훌쩍 이민을 떠났다가 지난달 말 귀국했으니 꼭 29년만이다. 그의 귀국은 갑작스럽고 뜻밖이다. 밴쿠버에서 운영하던 서점도 정리하고 부인과 함께 돌아와 상계동에 13평짜리 아파트를 샀다.
박씨는 한국문학사에서 둘도 없는 특이한 존재다. 소설집 「열명길」과 장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으로 우리 문학에서 소위 「구도적 형이상학 소설」과 「우주적 리얼리즘」을 추구한 작가. 동서양의 신화와 종교, 살욕과 성욕의 극한적 모습이 그의 소설을 종횡한다. 일반독자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설사 안다 해도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은 또 다른 구도적 노력을 요한다. 오죽하면 『한국에서 그의 소설을 전부 끝까지 읽은 독자는 그와 절친했던 평론가 고 김현 등 4명 밖에 없다』고 할까.
『왜 돌아왔냐구요, 밴쿠버에는 우람한 나무들이 많지요. 유리는 사막인데, 밴쿠버가 사막 같은 유리로 변하고 말더군요』 수수께끼 같은 그의 귀국변이다. 「유리」는 그의 소설 「유리장」에 나오는 무대. 원래는 고대중국 주나라 문왕이 은의 폭군 주에 의해 유폐됐던 땅의 이름이다.
최근 박씨는 단편 몇 편을 국내 문예지에 발표하고 산문 「산해기」를 연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독자의 관심과 의문은 「죽음의 한 연구」와 「칠조어론」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에 있다. 『세계는 몸의 우주, 말씀의 우주, 마음의 우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희랍신화의 우주가 몸의 우주라면, 기독(예수)이 와서 편 우주는 말씀의 우주이지요. 석가모니는 마음의 우주, 즉 색즉시공 할 때의 「공」이라는 우주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석가도 평생 우주를 지배하는 먹이사슬의 고리를 끊지는 못하고 괴로워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나 보살행을 말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박상륭은 그 고리를 끊었어요. 그것이 「칠조어론」 안에 있습니다. 책 좀 읽어보세요』
박씨는 자잘한 인간사나 세상사가 아닌 우주의 원리를 소설적 탐구의 주제로 삼고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당초 예수가 죽은 나이인 서른세 살에 죽음이라는 주제 하에 자신의 세계관을 집대성한 「죽음의 한 연구」를 완성했다. 그리고 석가가 죽은 나이인 마흔다섯 살 때 「칠조어론」을 끝낼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칠조어론」의 완결에는 5년이 더 걸렸다.
두 작업 다 캐나다에서 했다. 모국의 땅과 언어를 떠나 그는 몇년간 밴쿠버 도심 종합병원의 시체실 청소부로 일하며, 이후에는 서점을 운영하며 이 소설들을 썼다. 말이 안통해 실어증에 걸리기도 했다.
그의 글은 전체적인 운율을 따라 읽지 않으면 도대체 읽히지가 않는다. 더구나 그가 고국을 떠난 60년대 말의 언어가 그대로 살아 있다. 그래서 읽기가 더욱 어렵다. 그러나 그는 다시 『당대의 말이 최고는 아닙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어처럼 문학에 약한 말은 없습니다. 한국문학에 대해 내가 뭔가를 했다면 그건 내 말이 가장 문학적으로 승화된 말이라는 것이요』 화제는 자연스럽게 요즘의 문학풍토로 옮겨갔다. 『나는 30년동안 (대중에 영합하는) 소설을 안 읽었어요. 한국문학에 대해서는 (미안해서) 말 안하겠지만 세계문학을 통털어도 20세기 후반에는 도대체 대가가 없습니다. 이것은 작가의 잘못이 아니고 집단의 잘못이기도 하지만』
그는 귀국한 뒤 『따로 소설을 구상하고 쓴다기보다는 선가의 공안을 붙들고 생각이 깊어지면 그것을 글로 옮기고 있다』고 일상을 소개했다. 『21세기에는 새로운 법설이 나올 것입니다. 새로운 법유가 나올 거예요』 그의 말은 그 법유를 그가 여전히 캐고 있다는 것으로 들렸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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