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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홍보전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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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홍보전략이 없다

입력
1998.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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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없이 전통문화·관광정보 편중 ‘공보’수준/부처간 협조도 미비… 국가경쟁력 제고 걸림돌물건을 살 때 무엇을 먼저 보는가? 같은 종류의 물건이라면 우선 상표를 볼 것이다. 그다음 어느 나라 제품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값이 조금 비싸도 호감을 갖고 있는 나라의 물건을 선택할 것이다.

무엇이 구매를 결정하는가? 그것은 이름과 이미지다. 상품이나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것들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소는 홍보다.

한 나라의 총체적인 경쟁력을 좌우하는 국가홍보. 우리의 수준은 어느 단계인가? 『홍보는 없고 「공보」만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답변이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LA타임즈는 최근 『국산품애용운동으로 대표되는 한국인들의 경제적 민족주의는 도가 지나쳐 외국인들에게 공포감을 주고 있다. 한국내 외국기업인들은 판매격감으로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일부는 무례한 언동, 적대감, 심지어 폭행 대상이 되고 있다』 고 보도했다.

미국 의회와 경제계 일각에서는 한국에 대한 추가 금융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자칫 초미의 과제가 되고 있는 대외신인도 회복과 수출전선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되었다.

정부의 낙후한 외신관리 시스템을 보자. 외신을 적절히 활용하지 못할 뿐더러, 정책정보나 자료에 대한 외국언론 기자의 접근을 극도로 통제, 결과적으로 오보나 국익을 손상하는 비판기사를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외환위기가 본격화하던 11월초. 세계적인 경제통신사인 블룸버그와 월스트리트 저널지는 한국의 IMF행을 점치는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 외국인 투자가들은 즉각 한국주식 대량매도에 나섰고, 대출금 상환기일 연장을 거부하는 외국 금융기관들이 속출했다. 이에대해 정부는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며 정정보도를 요구하는 공식서한을 발송하는 등 뒤늦은 진화에 나섰지만 이는 금방 거짓말로 드러나 대외신인도 추락만을 부추켰다.

전문가들은 통일적이고 체계적인 홍보전략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무엇을 어떻게 알릴 지에 대한 기본적인 설계조차 없다. 그나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략이 뒤집어지고 조직의 골간까지 흔들리는 판이다. 국가홍보가 「공보」의 초보적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관성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부처간 협조체제의 미비는 국가홍보의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다. 최근 정부조직 개편 이전까지 해외홍보 기능은 외무부, 문화체육부, 공보처가 나누어 맡아왔다. 사안별 특성에 따라 유연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게 그 이유. 그러나 부처간 업무협조 체제가 아예 없어 비슷한 성격의 사업이 각기 따로 진행되는 등 홍보활동의 혼선과 비능률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외무부의 문화협력과와 문화체육부의 문화교류과, 문화체육부의 해외문화원과 공보처의 해외공보원처럼 업무상 경계가 모호한 유사조직 때문에 인력과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정부는 96년 부처간 협의와 통일적인 국가홍보전략 수립을 위해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대외홍보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그러나 전체회의 단 1회로 「시늉」에 그쳤다. 최근의 정부조직 개편에서 해외홍보 역량 강화를 위해 해외홍보 부문을 독립기구화하자는 안도 나왔지만 결론은 공보처 산하 해외공보관을 문화관광부에 통합하는 부분적 손질에 그치고 말았다.

각종 홍보수단과 소프트웨어의 부족도 심각하다. 가장 보편적인 각종 홍보책자는 전통문화와 관광정보에 편중돼 있어 한국의 현재 모습을 알리기에는 부적절하다. 또 대부분이 영어본이라 비영어권 사람들은 접근하기 힘들다.

한가지 예. 중국 베이징(북경)의 한국공보원 한국어 강좌. 강의때마다 선 채로 강의를 들을 정도로 중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강의교재라고는 정부에서 펴낸 한국어 교과서 1종이 전부. 다양하고 깊이있는 한국알리기는 엄두도 못내는 형편이다. 공보원 김옥준 과장은 『사업예산이 1년에 3,000만원밖에 안되기도 하지만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알릴 만한 중국어 책자와 시청각 교재가 거의 없어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다. 영사기는 있지만 틀어줄 필름이 없어 썩혀두고 있다』고 말했다.<황동일 기자>

◎코리아의 상징은 무엇?/자유의 여신상·에펠탑같은 국가이미지 만들어야

기회와 풍요의 나라 미국, 첨단기술의 왕국 일본, 문화의 나라 프랑스, 무한한 인력보유국 중국…. 나라마다 대표되는 국가이미지가 있다. 이 국가들은 「자유의 여신상」 「에펠탑」 「만리장성」 등 자국 상징물을 앞세운 부단한 대외홍보를 통해 성공적인 국가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비단 선진국뿐만이 아니다. 「캥거루」를 상징으로 광활한 대륙이 연상되는 호주, 「삼바」 「축구」로 열정의 나라를 대변하는 브라질. 이외에도 「튤립」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와 「간디」 「타지마할」의 나라 인도 등도 대표적인 상징을 내세워 국제시장에서 자국 이미지를 강하게 심는데 성공한 나라로 꼽힌다.

우리는 흔히 5,0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조용한 아침의 나라」, 빠른 경제성장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정도로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에 비친 우리 모습은 생각과 조금 다르다.

미국에서 지난해 귀국한 한인 2세 김소나(29·여·회사원)씨. 『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은 남북분단의 나라, 데모와 최루탄이 끊이지 않는 불안정한 나라로 인식돼 있다. 또 한국제 물건에 대해서는 IMF체제 이후 더욱 「싸구려」라는 이미지가 짙게 자리잡고 있다』

오랜 정치불안과 저가위주의 수출정책, 대외홍보 부족 등으로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각인돼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김씨의 말.

『미국의 한 박물관의 경우 일본전시장은 매우 크고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만 우리는 일본관 옆에 초라하게 만들어져 있다. 내용물도 전통을 강조한 건지 경제발전을 이미지화한 건지 뒤죽박죽이다. 호랑이나 남대문의 모습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ORC사의 96년 한국의 인지도 조사 결과 『한국의 경제규모나 수준, 기술력 등을 비교적 정확히 알고 있다』고 평가한 비율은 유럽인 1%, 미국인 3%, 일본인 6%였다. 경제규모에 비해 너무 가혹한 인식이다.

국가홍보의 필요성을 뒤늦게 느낀 문화부는 국가이미지 개선작업의 일환으로 지난해 1월 한국을 대표하는 이미지 대상을 발표했다. ▲한복 ▲김치, 불고기 ▲불국사, 석굴암 ▲태권도 ▲인삼 ▲설악산 등 10개가 선정됐다. 그러나 고작 정부간행 달력에만 활용했을 뿐 정부조직개편과 예산 절감 등의 이유로 더이상 진전된 것이 없다. 이미지 개선을 위한 영상물과 기념품 제작 등은 아예 기획단계에서 보류됐다.<염영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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