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의 곳간’을 채우자우리는 지금 기묘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포성이 들리지 않고 연기와 불꽃이 보이지 않을 뿐 하루에도 수십의 공장·기업체가 무너지고 수많은 해고자가 양산되며 자살하는 기업인과 가장들이 한달에도 수십을 헤아린다. 또 강도와 절도는 전국에서 수도 없이 나타나고 있다. 하루아침에 나라의 부(국부)와 국민의 재산이 몇분의 일로 줄고 계속해서 나라의 재산은 밖으로 빠져나가니 이 어찌 전쟁이 아니랄 수 있는가.
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전쟁」은 외환이 아니고 우리 스스로 불러들인 전쟁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더하다. 이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일차적 책임자들의 잘못은 가려져야 하겠지만 책임소재가 밝혀진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사태의 원인과 배경을 곰곰히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우리 국민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에 외양간에 들어있는 황소를 잃어버린 것이다. 자신의 소가 이미 어미소가 된 것을 모른채 송아지 수준의 외양간을 간수하는데 만족하다가 소는 드디어 남의 소가 되고 말았다.
용렬한 지도자를 뽑은 것도 우리요,무책임한 관리자들을 믿은 것도 우리며,재벌들의 터무니없는 탐욕을 억지하지 못한 것도 우리였다. 우리에게 제대로 된 학문을 하는 대학이 있었다면,또 우리에게 제 몫을 다하는 어른이라도 있었다면 어찌 이를 용인하였을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몰랐다. 스스로를 안다는 것(지기)은 바로 남을 안다는 것(지피)이기도 하다. 우리의 앎의 수준이 낮아 나와 남을 몰랐기에 자만했고 사치와 낭비를 일삼고 지나치게 욕심부리고 무리했으며 마침내 무책임하고 비겁하기까지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지경으로 무지한 국민,무식한 지도층을 가질 수 밖에 없었는가.
문화는 자존심이요,무지와 무심은 치욕일 뿐이다. 절세의 애국자 백범 김구 선생은 일찍이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우리의 부력은 우리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 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빼어난 사상가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 갈파했다. 우리는 이제라도 무지와 무식을 박차고 「슬기의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역대 권위주의정권은 한결같이 책읽는 백성,생각하는 백성을 원치 않았다. 그 반증은 어느 정권도 출판진흥을 위하여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간섭과 탄압에 더 열을 올렸다.
우리 역사에서 재위당시 세계적인 문화국가를 구가했던 지도자들은 예외없이 백성들에게 책읽기를 적극 권장했다. 15세기 세종대왕이 그러했고 17,18세기 영조와 정조가 그러했다. 그리하여 과학기술이 세계 첨단으로 발전했고, 경제가 풍족했으며, 나라가 국태민안하지 않았는가.
오늘의 이 기묘한 전쟁은 세계무역기구(WTO)체제 아래 우리 민족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갈림길이다. WTO체제는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Pax Amricana)의 관철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예상되는 영어권 천하에 자국어로 된 민족문화의 살길을 찾기 위해 출판진흥,곧 국민 독서진흥정책 수립에 동분서주하고 있음을 본다.
이제 우리는 천만다행하게도 책읽기를 좋아하는 대통령을 맞이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대통령이 앞장 서서 온 국민으로 하여금 책을 읽고 생각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한다면 반만년동안 위대한 민족문화를 가꾸어온 문화적 저력을 갖고 있는 우리 국민은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를 최단기간 안에 돌파할 창조력을 각 분야에서 쏟아낼 것이다.
그리하여 이 자리를 빌어 새 대통령께 가칭 국가독서발전위원회를 직속기관으로 설치·운영할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이제 머지않아 2000년대에 들어선다. 인류 앞에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고 있다. 이 경제전쟁,과학기술의 전쟁,총체적 문화전쟁에서 우리 국민과 겨레가 한국형 세계문화를 가꾸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대통령이 앞장서서 국민으로 하여금 공부하는 국민,창조하는 국민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지식산업사 대표·한국출판연구소 이사장>지식산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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