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가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이미 32년간 장기집권해 온 제왕적 수하르토 정권은 10일 국민협의회가 그를 7선 대통령으로 선출함으로써 통치기간이 5년 더 연장됐다. 국민협의회는 또 그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했다. 앞으로 반정부활동은 가차없이 무력으로 탄압하겠다는 뜻이다.파산상태의 경제재건을 위한 IMF의 개혁요구와 미국 정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사태는 반대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은 압력수단으로 스테이플턴 로이 대사를 소환해 대책을 숙의 중이고 IMF는 인도네시아가 요청한 구제금융의 2차분 30억달러 지원을 연기조치했지만 루피아화 가치만 떨어뜨렸을 뿐 수하르토가 말을 들어 줄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IMF의 개혁처방은 사실 수하르토체제의 해체를 의미한다. 족벌과 군부, 화교 재벌에 의해 유지돼 온 인도네시아경제에 특혜와 관치금융 관행을 없애라는 주문은 정권을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를 것이 없다. 긴축재정과 고금리도 물가만 올려 놨을 뿐 당장 식량과 생필품을 찾아 약탈에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서민생활에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수하르토는 이처럼 전국에 만연한 사회불안을 IMF의 가혹한 처방 탓이라며 국수적 자본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경제파탄은 외국자본의 착취에 기인한 것이며, 이에 맞서 인도네시아가 살 길은 대외금융거래 없이 국가자원과 자산만으로 자력갱생하는 방법을 찾는데 있다는 논리다.
세계 제 4위의 인구대국 인도네시아가 이처럼 폐쇄적 민족주의 노선을 선택할 경우 그 파장은 국내에 머물지 않는다. 배타적 회교원리주의가 득세하고 굶주림과 산불 환경공해를 피해 이웃으로 번져가는 난민이 늘어난다면 동남아국가연합(ASEAN)을 기간으로 하는 동아시아 안보질서에 심각한 위기가 발생할 것이다. 화교에 대한 민족적 박해는 중국의 군사개입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 나라에는 우리 교민이 1만5,000여명이나 살고 있으며 연간 교역규모가 70억달러, 직간접 자본투자도 100억달러에 달한다. 당장 금융채권회수가 급하더라도 지금은 먼저 그들이 고립된 민족주의로 가지 않고 국제경제 시스템에 순응하도록 설득하는 노력에 동참해야 할 때라고 본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