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한 대화’로 푼 떠돌이 삶의 회한/소시민의 자화상 정경교융의 세계/그리고 처절한 아름다움/물흐르듯 농익은/그러나 마냥 편할 수 없는 우리네들 이야기「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 일찍이 그가 자신의 시 「파장」에서 그랬지만, 우리는 신경림(63) 시인의 시 한 구절만 읽어도 흥겹다. 그 흥겨움은 그의 시가 설명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이 읽기 쉽고 편하기 때문이다. 서사와 서정이 물 흐르듯이 하나가 되고, 경과 정이 어디 어긋난 데 없이 조화롭게 융화되는 「정경교융」의 세계(도종환 시인의 말)야 말로 신씨의 시가 보여주는 미덕이다.
그가 7번째 시집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창작과비평사 발행)을 묶어냈다. 「쓰러진 자의 꿈」(93년) 이후 5년여동안 써 온 60편의 시를 모았다. 한 달에 한 편 꼴의 과작으로 발표한 시들이다. 그는 시집을 내면서 『시에 대한 생각이 옛날같지 않다』고 말했다. 『요즘은 갈수록 시는 「간절한 대화」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상대방과 마주보며 대화하듯 풀어 놓으니 그의 시는 쉽고 편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가 편안한 시구 속에 새겨둔 의미는 결코 독자를 편하게만은 하지 않는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노름으로 밤을 지새지 않았다/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러나 시인은 문득 깨닫는다.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거울을 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그 거울 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소리 한번 못 치는/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아버지의 그늘」 부분). 어쩔 수 없는 소시민인 우리들의 자화상을 시인은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 어릴 적 살았던 산읍(산움). 그 곳의 광산도 색시집도 화약장수도, 취해서 널부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온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입을 꾹 다문채」 끓여주던 술국도,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던 할머니도 없지만 시인의 아버지는 자신의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이것은 회한일 것이다. 신씨의 새 시집에는 이렇게 여전히 떠돌이처럼 길 위에 서 있는 시인의 회한을 담은 시편들이 많다. 그가 후기에서도 밝히고 있듯 지난 5년이란 『몰락한 사회주의를 현장에 가서 목도도 하고, 우리 자신이 거덜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겪기도 한』 세월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시집에는 그가 나라의 산과 들을 떠돌기도 하고,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가」 중국과 베트남, 일본 땅도 밟으면서 건진 시편들이 함께 실려 있다.
그러나 내면으로 침잠해버린 듯 보이면서도 그가 「농무」에서 우리에게 주었던 신명, 「가난한 사랑노래」에서 일깨웠던 처절한 아름다움은 이번 시집에서도 농익어 살아 있다. 「생전에 아름다운 꽃을 많이도 피운 나무가 있다/해마다 가지가 휠 만큼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나무도 있고,/평생 번들거리는 잎새들로 몸단장만 한 나무도 있다/가시로 서슬을 세워 끝내 아무한테도 곁을 주지 않은/나무도 있지만, 모두들 산비알에 똑같이 서서/햇살과 바람에 하얗게 바래가고 있다」(「흔적」 부분). 그에 따르면 우리는 산비알에 서서 함께 살아가는 나무들이다. 서로에게 「곁」을 주어야 한다.
신씨는 최근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으로 선출됐다. 93∼94년에 이어 두번째로 맡은 일이다. 그는 『출판계가 쑥밭이 되고 글 쓰는 이들이 일할 터전이 무너졌지만 좋은 문학을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문인의 존재이유』라며 『그들이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하종오 기자>하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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