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 59명·예산 121억원뿐/문화소개·한국어 보급 등/맡은 업무는 무려 41가지한 명에게 40가지가 넘는 업무를 한 번에 지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라도 일을 포기하거나 그 자리를 빠져나갈 궁리만 할 것이다. 국가홍보를 최일선에서 책임지는 문화관광부 소속 「해외주재관」. 정부가 그들에게 부여한 임무가 바로 「1인 41역」이다.
정부조직개편으로 공보처 업무가 문화관광부 등으로 통합되면서 59명의 해외주재관은 기존 업무에다 문화나 공보업무가 추가돼 업무 과부하가 단단히 걸려 있다.
현재 해외주재관은 29개국 36개 도시에 분산돼 있다. 미국은 UN을 포함해 13명의 주재관이 나가 있고 일본은 6명, 중국 4명, 프랑스 독일 영국 등은 2∼3명의 주재관이 담당하고 있다. 그 외에 20여개국은 단 한명의 주재관이 41개 항목의 국가홍보기능을 맡고 있으며, 동유럽과 아프리카는 각 2명의 주재관이 인접국가까지 모두 챙기는 「슈퍼맨」역할을 하고 있다.
해외공보관에서 밝힌 41가지 업무내용은 이렇다. ▲한국문화공연 및 전시 ▲한국어, 영화보급 ▲한국문화소개 강연회 세미나 개최 ▲재외동포 지원 ▲국제문화기관과의 유대강화 ▲한국홍보 간행물 발간 배포 ▲주재국 언론인 접촉 및 호의적 보도 유도 ▲언론 매체에 한국보도 영화방영 유도 등….
업무 항목은 거창하지만 인원과 예산부족으로 실상은 뭐하나 제대로 되는게 없다. 그저 주재국의 신문스크랩과 본부 보고서 작성에 하루 해가 넘어간다.
해외주재관 출신 A씨. 『3년동안 근무하며 국가홍보를 위한 이벤트행사로는 무용단 공연, TV드라마 방영, 영화상영 각 1회씩 뿐이다. 영화의 경우 그나마 자막이 영어로 돼 있어 연사를 고용해 상영해야 했다. 의욕적으로 일을 해보려 해도 일손은 없고 지원도 열악한데 어떻게 하겠느냐. 그저 신문스크랩이나 하고 현지 한인들과 유대관계나 좋게 하다 귀국한다』
그는 또 『그동안 20여가지가 넘는 업무도 제대로 할 수 없는 형편인데 앞으로는 40여가지의 일을 하라고 한다. 국가홍보는 그만두고라도 주재국 언론관계나 제대로 챙길 수 있을 지 의문이다』고 덧붙였다.
또다른 해외주재관 출신인 B씨는 본국에서 오는 「높은 분」접대라도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장관이나 국회의원 등이 한번 다녀가면 방문일 전후 며칠동안은 업무마비 상태다. 공식적인 방문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찾아와 누구를 만나게 해달라, 어디를 방문하게 해달라 부탁하면 괴롭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도 있다』
3,500∼5,000명에 이르는 직원을 해외파견시키는 미국 영국 등 선진국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웃 중국의 260명에 비해도 우리의 홍보담당 해외주재관은 현저히 적다. 예산도 선진국의 1조∼1조5,000억원의 1% 정도인 121억원에 불과해 국가홍보 분야는 후진국 수준이다.
베트남에서 3년간 주재관으로 부임하다 귀국한 최규학씨는 보다 체계적인 국가홍보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일본 등은 민간 정부 기업 등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라 국가홍보 시스템이 제대로 돼 있는 편이지만 베트남같은 제3세계 국가들은 이런 기능이 취약하다. 선진국의 경우 단순히 홍보만으로 이미지를 바꾸기는 힘들지만 제3세계 국가들은 홍보에 따라 국가이미지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40여가지가 넘는 업무항목을 나라마다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것 보다 각국의 특성에 맞는 체계적인 홍보전략을 세워야 한다』<염영남 기자>염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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