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맥아더·아이크·슈워츠코프·파월등 8명/20세기 미최고 군사전략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맥아더·아이크·슈워츠코프·파월등 8명/20세기 미최고 군사전략가

입력
1998.03.11 00:00
0 0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20세기의 미 군사전략가는 누구일까. 미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는 10일 발행된 최신호에서 존 J 퍼싱, 커티스 리메이, 더글러스 맥아더,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조지 마셜, 윌리엄 웨스트모얼랜드, 콜린 파월, 노먼 슈워츠코프 장군 등 8명을 선정했다.퍼싱 장군은 1차대전중(1914∼18) 유럽 주둔 미원정군을 지휘하고 1921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사막의 폭풍작전」(걸프전)을 지휘한 슈워츠코프와 파월 장군은 각각 육사와 뉴욕시립대 ROTC 출신으로 월남전에 참전, 부상에도 불구하고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아 4성장군까지 진급했으며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었다.

맥아더원수는 2차대전후 미주리호 함상에서 일본의 항복조인문서를 받아낸데 이어 70세의 나이에 인천상륙작전을 총지휘, 한국전의 전세를 반전시켰다. 한국전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북한을 배후 지원하는 중국의 만주공격을 주장하다가 끝내 해리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됐다. 그는 의회에서 『노병은 결코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34대 대통령이었던 아이젠하워 장군은 2차대전중인 1944년 6월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리에 지휘, 유럽 전세를 승리로 굳혔다. 이후 육군참모총장과 초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사령관을 지냈다.

마셜 장군은 1차 대전중에는 퍼싱 장군의 보좌관으로 활약했고 1939년 육군참모총장에 올라 2차대전후 국무장관을 지내며 유럽부흥계획을 수립,5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오하이오 주립대 ROTC 출신인 커티스 리메이 장군은 1941년 소령에서 44년에는 37세의 나이로 당시 최연소 육군 소장으로 진급한 폭격기 조종사(당시 공군은 육군에 소속). 전략공군사령부(SAC)를 창설,48∼57년까지 초대 SAC 사령관을 지냈다. 웨스트모얼랜드 장군은 월남전 당시 미군 총사령관. 한때 베트남주둔 미군 50만명을 지휘했던 그는 반전무드에 시달렸으나 후에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본사" 특약>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