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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환 신임 한국은행 총재(한국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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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철환 신임 한국은행 총재(한국인터뷰)

입력
1998.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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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구조조정 늦출 수 없다”/“분배정의는 성실한 노동이 전제돼야”/고시거쳐 기획원서 공직 첫발 ‘유신’후 그만둬/80년 교수시국선언 참여로 기관에 끌려가기도6척 장신에 벌어진 어깨, 각진 얼굴, 짙은 눈썹, 날카로운 콧날…. 외모로 본 신임 전철환 한국은행총재는 다분히 무골형이다. 역대 중앙은행총재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다. 하지만 단 몇마디라도 얘기를 나눠보면 전총재가 영락없는 선비임을 느낄 수 있다. 달변은 아니지만 확신이 배어있는 어투속에 경제정의에 대한 고집과 구조개혁에 대한 소신을 읽을 수 있다. 그가 한은총재로 임명됐을 때 많은 사람은 「의외의 인사」라고 생각했다. 80년대 정부비판적 성향의 글을 자주 썼던 지방대학교수 정도로만 알려진 그가 새 정부 초대중앙은행총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전총재가 개발연대에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생활을 했었고 금융계 최고명예직인 금융통화운영위원을 지냈으며 최근까지도 시민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등 아주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지금도 별로 없다. 한은총재임명 다음날인 7일 상오 서울 방배동 자택에서 전총재로부터 학자로서의 경험과 중앙은행총재로서의 계획을 들어봤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전주에서 고등학교(전주고)까지 다녔지만 22년간 대전 충남대학교에서 교수생활을 해온 탓에 전총재는 충청도말씨를 쓰고 있었다.

▣대담=이성철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을 국제금융자본의 첨병이자 국제경제권력의 대명사로 규정한 칼럼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결과적으로 이하정관지필화(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맨 격의 글을 썼다가 화를 입었다는 뜻)입니다. IMF 체제로 가게 된 현실에 대해 학자로서의 책임과 부끄러움을 느껴 1월 한은소식지에 칼럼을 썼던 것입니다. 학자신분으로 한 얘기인데 한은총재가 되고나니까 오해가 생기더군요』

전총재, 당시 전교수는 이 칼럼에서 「현 사태를 예견하고 대응하는데 무력했던 무지와 무능에 부끄러움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관료집단은 위기설을 한낱 증권가루머로 치부했던 관성때문에, 재벌은 무한축적을 위한 야생동물적 충동때문에, 금융계는 실세이하의 안정환율에 기대어 내외금리차를 추구하는데 눈이 어두워 있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었다.

­한때 반정부지식인으로 낙인찍혀 상당한 고초를 겪으셨다는데.

『다 지난 일인데요…. 80년 전국의 대학교수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잇따라 발표할 때 함께 참여했었습니다. 기관에 끌려가기도 했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그러다가 83년 정부직인 금융통화운영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사실상 「사면」된 것 같습니다』

­80년대 한국경제구조의 문제점에 대한 전총재의 비판적 저서들은 당시 대학가의 필독서가 될 만큼 인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성장일변도의 당시 시대분위기에서 분배정의를 강조하셨는데 그 소신은 지금도 변함이 없으신지요.

『성장과 분배가 별개처럼 인식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자원분배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면 사회적 갈등이 생기게 되고 결국 성장의 동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물가안정도 무조건 물가를 묶는 것이 아니라 자원배분이 안정되게 이루어지느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분배를 강조하는 것이 결코 일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무조건 골고루 나눠주자는 뜻은 아닙니다. 분배정의는 누구나 성실하게 일한다는 전제조건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전총재의 40평 남짓한 아파트 거실에는 김구 선생이 직접 쓴 「노동신성」이란 액자가 걸려있다. 전총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긴다는 이 글귀는 「일하는 것이 가장 신성하다」는 뜻으로 그가 주장하는 분배정의론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총재가 과거 교통부에 근무하던 시절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전 교통부장관이 이 글이 진본임을 확인해줬다고 한다.

­첫 출발은 공무원이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부관료에서 비판적 경제학자로 바뀐 셈인데.

『대학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경제기획원에서 공무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이규성 재경부장관이 고시동기생이고 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은 전주고 후배지만 제가 군복무를 마치고 임용됐기 때문에 공직생활은 함께 시작했습니다. 전임 이경식 한은총재도 당시 경제기획원에 근무하고 계셨어요. 기획원에 있다가 경제과학심의회 교통부를 거쳐 나중에는 무임소장관실로 배속됐는데 이는 당시 중화학공업기획단에 파견하기 위한 절차였습니다. 그러나 공직생활에 나름대로 개인적 한계를 느껴 그만두게 됐습니다』

­개인적 한계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그냥 개인적인 것으로 해두지요. 유신 등 당시 정치상황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고…』

전총재는 61년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4·19세대다. 대학시절부터 정의감과 의협심이 남달랐다고 주변사람들은 평하고 있다. 일부에선 「전봉준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란 농담섞인 해석도 한다.

­동학혁명을 일으킨 전봉준 선생의 후손이라고 들었는데요.

『같은 천안 전씨로 집안 어른들로부터 같은 가계라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공무원 시절 상사였던 김학렬 부총리와 에피소드가 있었다는데요. 총재께서 경제기획원에 있을 때 김부총리가 시청앞에 분수대를 건설하라고 지시하자 「우리 경제실정에 불필요하다」며 강하게 반대했고 결국 이 때문에 미움을 사 공직생활을 그만두게됐다는 얘기가 있는데 맞습니까.

『(웃으면서)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김부총리께서는 후배들을 많이 아껴 주셨습니다』

­공무원을 그만두고 왜 하필이면 대전으로 내려가셨는지요.

『공직생활을 중도하차한 후 아예 서울을 떠서 초야에 묻혀지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경제학과 은사이신 박희범 선생님께서 충남대 총장으로 계셨기 때문에 대전으로 내려가게 된 거지요. 두 아들이 모두 서울로 진학하기전까지는 계속 대전에서 살았습니다』

전총재는 「자식농사」를 아주 잘한 것으로 소문나있다. 큰 아들은 서울대의대를 졸업해 현재 인턴으로 있으며 작은 아들은 서울대 법대를 나와 사법시험에 합격,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부인 이경자 여사는 전총재가 재직했던 충남대 국문과교수로 있다. 이여사는 『남편이 교수로 있을 때에는 주말엔 서울에 있고 주중에는 대전에서 생활했는데 앞으로 어떻게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을 털어 놓았다.

­전총재께서는 「독립된 중앙은행」의 사실상 초대총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한은법 개정안이 독립성확보에 미흡하다는 지적도 있고 또 정부와의 관계설정 등에서 아주 어려운 일이 많을 텐데요.

『글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한은법은 아직 완전하게 보지 못했기 때문에 독립성이 충분하다 혹은 미흡하다고 단언해 말할수는 없습니다. 한은독립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고 마찬가지로 정부와 유기적 협조도 필요합니다. 이규성 장관과는 고시동기생이어서 협의에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협조할 수 없는 사안에 대해선 정부에 협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까.

『(웃으면서) 너무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88,89년 한은법파동 당시 전총재는 금통위원으로서 한은독립을 강하게 주장했다. 89년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금통위원들에게 한은독립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전총재는 금통위원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정부안을 비판했다. 한은간부들은 전총재의 금통위원 시절에 대해 『질문과 토론을 매우 좋아했다』고 회고하고 있다.

­학자시절부터 총재께서는 한국경제의 구조개혁을 주장하셨습니다. 새 정부의 구조조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장을 위해 구조조정을 늦추자는 것은 틀린 얘기입니다. 지금 우리경제는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더이상 성장잠재력을 배양할 수 없습니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합니다』

□약력

▲1938년 전북 익산 출생

▲전주고·서울대상대 ·영국 맨체스터대학원

▲12회 고등고시 행정과 합격(1960년)

▲경제기획원 교통부 중화학공업기획단 근무(1963∼75년)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1976∼98년)

▲금융통화운영위원(1983∼89년)

▲한국경제발전학회장(1995∼98년)

▲경실련고문·올바른 지방자치실현을 위한 시민모임공동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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