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바라보면 한국은 여전히 동트기 전이다. 환율 탓에 월급은 절반으로 가라앉고 서울에서 한갑에 900원이면 족한 담배를 5,000원이상 주고 사 피우는 이곳 생활 때문이 아니다. 까짓 개인적 궁핍이야 이를 악물어 넘기면 그만이다. 문제는 도무지 눈앞에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곳의 국내 금융·기업 관계자들의 얘기는 우울하기 짝이 없다. 국가부도위기에 직면했던 지난 연말에 비해 나아진 것이 없다. 협상으로 만기연장을 한 금융기관은 그래도 사정이 낫다. 협상대상도 못된 채 500억달러이상의 엄청난 빚더미를 지고 있는 기업은 거의가 「기술적 부도」상태이다. 채무자의 「아량」으로 하루하루 연명하지만 언제 부도의 나락에 빠질지 모를 살얼음판이다.
이를 두고 특파원들간에 만들어진 조어가 「위기의 롤오버」(만기연장)이다. 우리를 짓누르던 외채의 상환 만기가 연기된 것처럼 위기도 시한만 연장됐을 뿐 결코 사그라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롤오버로 이자등 상환부담이 불어난 것같이 다가올 위기는 더 파괴적일지도 모른다.
세계의 돈흐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읽고 있는 월스트리트가 이를 모를리 만무다. 4일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사가 밝힌 한국관련 분석은 징그러울 정도로 명확한 것이었다. 외환위기의 고통은 올 초여름께 본격화하고 회복하려면 아무리 일러도 내년이나 2000년께야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고국 소식마다 난감하기 그지 없다. 거리에 차량이 다시 넘치고 고급수입품 소비가 늘고 있다니 귀가 의심스럽다. 난파선의 안전 귀항을 책임진 정치권의 행태는 해도 너무 한다. 한고비를 넘겼다고 안도하기에는 다가올 시련이 너무 벅차다. 제발 나라부터 구하고 보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