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매화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전남 광양 섬진마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매화 향기는 바람에 날리고/전남 광양 섬진마을

입력
1998.03.05 00:00
0 0

◎섬진강 끝자락이 백운산과 만나는곳/보랏빛 저녁강가엔 연분홍빛 꽃구름섬진강 550리 물길이 광양만으로 흘러드는 물목 언저리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마을은 때 이르게 찾아온 꽃손님맞이에 하루하루가 신명이 난다. 섬진강 끝자락 150리 물길을 어루어 광양만으로 인도하는 백운산 자락에는 연분홍 꽃구름이 내려앉았다. 예년보다 보름이나 앞서 찾아온 꽃손님이다.

 매화는 이른 봄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 서둘러 봄을 알린다. 섬진마을 매화는 개화시기가 다른 고장보다 일러 올매화라고 하는데 올해는 1월 중순부터 여린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꽃봉오리가 어느 해보다 탐스럽다. 꽃샘바람도 섬진마을의 매화 앞에서는 숨을 죽인다. 바람에 실린 그윽한 꽃향기가 삶의 고단함을 잊게 해준다.

 기후가 온화한 섬진마을은 마을 앞으로 강이 달리고 있어 안개가 자주 피어올라 매화의 생장에 적합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섬진마을에서는 매화가 피는 방향을 보고 일년농사를 점친다. 땅을 보고 수그려 핀 매화가 많으면 비가 많이 오고, 하늘을 향한 매화가 많으면 늦서리가 내린다는 것이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매화를 보며 마을사람들은 올해도 풍년을 예감한다.

 백운산 삼박재 골짜기 기슭에 터를 잡은 섬진마을의 봄은 섬진강 쪽빛 물줄기를 닮았다. 강둑으로 나가면 강 너머 지리산자락이 아스라이 다가온다. 강둑을 따라 늘어선 대숲의 노래를 뒤로 한채 들녘을 바라보면 산비탈 논자락마다 푸른 기운이 감돈다.

 이름처럼 섬진마을에서 바라보는 강풍경이 참 아름답다. 봄볕을 받아 속살거리듯 반짝이는 물색도 좋지만 마을사람들은 저녁노을에 감싸인 보랏빛 섬진강을 더 좋아한다. 4월이면 강변에 나와 재첩을 건져 올리는 아낙네들의 모습도 볼만하다.

 섬진강을 옆에 끼고 861번 도로를 따라 구례쪽으로 걷다 보면 매화가 만발한 꽃길이 나온다. 꽃길 사이로 난 조붓한 길을 오르면 청매실농원. 삼박재 골짜기에 자리잡은 청매실농원에서는 꽃무리를 이룬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일찍 피어나는 올매화, 늦게 피는 넘매화, 동양화에서나 봄직한 가지가 휘어질대로 휘어진 수령 60년의 고목도 있다. 매화의 고장 섬진마을의 유래는 청매실농원에서 비롯된다. 청매실농원 주인 홍쌍리(55)씨의 시아버지 되는 김오천(88년 작고)씨가 1930년부터 삼박재 골짜기에 매화나무를 심어 매화의 고장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지금은 며느리 홍쌍리씨가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홍씨는 매실음식명인이라는 이름을 더했다. 청매실농원을 찾으면 홍씨는 구수한 얘기를 건네며 상큼한 매실차를 내놓는다.

 지난 해부터 섬진마을에서는 매화 만개시기에 맞춰 매화축제를 연다. 올해는 예년보다 10여일 빨리 꽃망울을 터뜨려 축제도 7, 8일로 앞당겨졌다. 매화박사뽑기, 매화그리기, 사진촬영대회등의 행사가 펼쳐지는데 광양 「버꾸(법고)놀이」의 명인 양향진씨의 공연과 조상현명창의 판소리 한마당이 볼만할 것이다. 축제기간에 매실제품과 백운산 작설차, 고로쇠약수도 판매된다.

◎식초·장아찌·김치·음료…/매실로 별별걸 다 만들어요/30년 농사 청매실농원 홍쌍리씨

 청매실농원 주인 홍쌍리(55)씨는 남들 앞에 좀처럼 손을 내놓지 않는다. 웬만한 남자 손보다 크고 거칠기 때문이다. 굵은 손마디에서 고난의 세월을 짐작할 수 있다. 홍씨의 고향은 경남 밀양. 스물 세살 꽃다운 나이에 말설고 물설은 두메산골 광양땅으로 시집와 30년 동안 「손이 호미가 되고 괭이가 되고 갈퀴가 되도록」 매실농사 하나에만 매달려왔다.

 『「촌며느리 봤으면 일도 잘 하고 말도 알아들을 텐데 도시며느리 봐서 골병 든다」고 시어머니한테 타박 많이 들었어요. 밤마다 이불 둘러쓰고 우는 게 일이었죠. 동네사람들이 섬진강 물은 말라도 내 눈물은 안 마를 거라 했어요』 홍씨가 그나마 마음을 붙이고 살게 된 것은 시아버지 김오천(88년 작고)씨의 힘이 컸다. 김씨는 섬진마을에 매실농사의 뿌리를 내린 사람. 『우리 아부지』, 홍씨는 시아버지를 그렇게 부른다.1930년 김씨가 일본에서 종자를 가져와 삼박재 골짜기에 심은 매화나무는 이제 60년이 넘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시아버지의 혜안에 홍씨는 여인네의 솜씨를 보탰다. 『시아버지가 매실을 고아서 고약같이 만드는 걸 보고 따라해봤어요. 매실로 별별 걸 다 만들어봤어요』 94년 식품제조허가를 받아 매실식초, 매실장아찌, 매실김치등을 생산하게 됐다. 지난해에는 농림부로부터 메실엑기스 명인으로 지정됐다.

 농원을 찾는 사람들은 마당에 늘어선 1,800여개의 옹기에서 홍씨의 남다른 집념을 읽는다.『옛날 옹기는 숨을 쉬거든요. 거기에 담가야 매실주든 김치든 제맛이 나요』홍씨의 정겨운 경상도 사투리와 매화꽃구름을 못잊어 올해도 사람들은 청매실농원을 찾는다.

(0667)772­4066<김미경 기자>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전주IC에서 남원으로 빠져 구례로 들어서 간전교를 지나 40㎞를 달리면 다압면. 서울에서 5∼6시간 걸리는데 지리산 자락까지 갈 요량이면 강건너 하동에 잠자리를 잡고 넉넉히 둘러볼 수도 있다. 아침 일찍 서두르면 하루 나들이로도 가능하다. 섬진강의 새벽 봄안개를 보고 싶다면 서울역에서 밤 11시35분에 출발, 이튿날 새벽 6시22분 하동에 도착하는 진주행 무궁화호 밤열차를 타도 좋다.<김미경 기자>

◎매실/피 맑게하고 피로회복 효과

 매화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1,500년전인 신라시대에 전래됐다. 이른 봄 잎보다 먼저 흰 색 또는 연분홍색 꽃이 피고 6월에 살구모양의 열매가 열린다. 매실로 불리는 열매는 주로 약재로 쓰여왔다.

 매실은 추위에 약해 주산지가 지리산을 기준으로 전라도와 경상도 남부지방으로 한정돼 있다. 섬진강유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봄안개가 잦아 매실생장에 알맞다. 여기서 생산된 매실은 알도 굵고 품질도 뛰어나다. 우리나라 매실은 신맛이 특징. 매실의 신맛에는 몸의 노폐물을 말끔히 씻어주는 구연산등 몸에 좋은 유기산이 풍부해 체질개선에 도움이 된다. 각종 미네랄성분도 많이 함유돼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약재의 효능을 밝힌 「본초강목」에는 『간과 담을 다스리고 폐와 장을 수렴한다. 오공을 통하게 해 혈액을 맑게 하며 근육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어 피로회복에 효과가 있다』고 매실의 효능을 기록하고 있다.

 매실주 매실차 매실김치 매실장아찌 매실정과등 매실로 만든 음식도 다양하다. 매실김치와 장아찌는 입맛을 돌게 해 봄을 타는 사람에게 권할만하다. 매실음료는 열을 가라앉혀 여름철 더위를 먹었을 때 마시면 좋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