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하고도 새 정부가 구성되지 못하는 기현상이 엿새나 계속됐다. 새 대통령 아래 구 정권의 총리와 장관이 「동거」하는 전대미문의 희한한 일도 벌어졌다. 이는 바로 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가 지연됐던 탓이다. 국회는 2일 총리임명동의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여야간에 표결방식 시비로 끝내 파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변칙투표」를 감행한 한나라당이나 정치력 부재를 드러낸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행태는 누가 더 못하고 나을 것도 없다. 여야만 뒤바뀐 「구태 국회」의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었을 뿐이다.
한나라당이 지난달 25일 국회 본회의 집단불참에 이어 2일 본회의장에서 변칙투표 방식을 택한 것은 「JP총리 반대」당론 관철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이지 다른 무슨 명분이 있겠는가.
한나라당은 「JP 총리」가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정정당당하게 표결에 임해야 했다. 한나라당이 반대당론을 결정하고도 오락가락한 것은 복잡한 내부사정도 한몫을 했다. 당지도부나 중진들이 4월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 표를 의식해 선명성 경쟁을 벌인 측면도 없지 않다. 무기명 비밀투표를 하겠다고 공언해놓고 내부적으로 편법을 동원한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렇다고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정치적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자민련 소속의원 전원이 투표에 불참한 채 한나라당 의원들의 투표를 저지한 것은 처음부터 임명동의안 부결을 우려해 표결을 무산시키려는 전략을 세운 게 아니냐는 오해를 받아도 할 말이 없게됐다.
여권은 한나라당이 대선패배후 구심력을 잃은 채 무기력해졌기 때문에 밀어붙이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준비된 대통령」처럼 「준비된 여당」이라면 야당의 체면과 명분을 세워주면서 야당측의 협력을 끌어낼 수 있는 정치상황을 조성해나가는 정치력을 발휘했어야 했다. 그러나 여권은 야당이 막다른 선택을 하도록 방치했다.
정치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여당은 김대중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경제위기속에서 야당이 협조할 수 밖에 없으리라는 안이한 정세판단으로 교만하지 않았는 지 생각해 봐야한다.
여권은 국정공백을 장기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일단 JP총리서리체제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총리서리체제는 위헌시비를 예고하고 있다. 이미 한나라당은 총리서리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고 있다. 이래서야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가 있겠는가. 여야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빨리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총리임명동의 문제를 매듭지어야 한다. 그것이 서로 살고 나라도 살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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