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시사지 ‘타임’ 창간 75주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시사지 ‘타임’ 창간 75주년

입력
1998.03.04 00:00
0 0

◎‘뉴스해설’ 새장열고 격동의 20세기 이끈 미 국민 정신적 지주 미국의 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은 3일 창간 75주년을 맞았다. 타임은 9일자로 잡지의 어제와 오늘을 조명한 특집호를 발행하고, 3일 하오 뉴욕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빌 클린턴 미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한 자축연을 개최했다. 9일자 특집호에 실린 타임의 역사를 요약한다.<편집자주>

 잡지는 생명체다. 1923년 3월 브리트 해든과 헨리 루스에 의해 탄생한 아이는 독특한 목소리에 건방지고 자기확신에 가득찬 모습으로 태어나자마자 번창하기 시작,1920년대를 순풍에 돛단 듯 나아갔다. 해든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1920년대를 비극적으로 마감했지만,그후 펼쳐진 대공황,2차대전과 홀로코스트,히로시마 원폭투하,냉전 등 격동의 어두운 세계사를 완벽하게 그려냈다.

 타임은 미국의 명물로,중산층의 정신적 조언자로,미국적 이미지의 수호자로 성숙해갔다. 로버트 허친스 시카고대 총장은 『타임과 그 자매지들은 교육기관들보다도 미국인의 인격 형성에 더 많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타임은 특히 2차대전 이후 미국의 태도와 정치적 여론,사회적 의식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워터게이트의 악몽에 시달리던 70년대 나라가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면서 리처드 닉슨의 사임을 촉구하는 타임 역사상 유일한 사설을 내보내기도 했다. 인류역사상 가장 복잡다단했던 한 세기의 역사를 기록한 3,900주를 거쳐 타임은 이번주 75주년을 맞았다.

 루스와 해든은 삶이 그러하듯 역사는 복잡하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업은 간단하다는 진리를 터득했기 때문에 성공했다. 루스는 『타임의 기사는 흥미를 돋우거나,서사적이거나,극단적으로 사실적인 것 중 하나여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흥미를 돋우는 목소리의 대표적인 예로 타임은 영국의 에드워드 8세를 유혹, 왕위에서 끌어내린 월리스 워필드 심프슨을 1936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또 서사적 목소리로,타임은 역사에 대한 절제되고 도덕적인 이해를 보여줬다. 일례로 45년 8월20일 2차대전 승전보를 전하면서 타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문제를 심도있게 다뤘다.

 60년대까지 커버스토리의 99%는 인물이었다. 창립자 루스가 살아있는 인간에 열정적 관심을 가졌고 「위대한 인물이 위대한 사건을 만든다」는 역사학자 칼라일의 말에 공감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백악관에서 가정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권위에 대한 도전이 일어난 60년대 이후 타임은 이슈와 사상을 다루기 시작했다. 권위를 완전히 뒤집는 실험의 대표적 예로 타임은 66년 4월8일자 커버에서 「신은 죽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82년에는 올해의 인물 대신 컴퓨터를 「올해의 기계」로 내세웠고 88년에는 죽어가는 지구를 「올해의 행성」으로 선정하기도 했다.<정리=이희정 기자>

◎창립자 헨리 루스/‘포천’‘라이프’ 등도 창간/언론계 신데렐라 명성

 타임의 공동 창립자 헨리 루스와 브리트 해든은 시대의 개척자였다. 예일대를 다니던 이들은 1923년 3월3일 뉴스 「보도」에만 충실하던 당시 언론의 성역을 깨고 「해설」위주의 시사주간지를 창간했다. 「타임」의 명칭은 「시간(Time)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는 취지에 따라 정해졌다.

 1898년 장로교 선교사인 아버지가 활동하던 중국 텅차우(현재 펑라이)에서 태어난 루스는 다양한 독서열과 새로운 세계에 대한 관심이 충만한 열정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15세 되던 1913년에 유럽을 단신 여행하는 당찬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1920년 예일대에 입학한뒤 그는 학생신문 제작에 적극 참여하면서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동급생 해든과 만나 의기투합했다. 보수주의자를 자처한 루스는 타임의 역할을 엘리트와 중산층을 연결시키는 도구로 규정했다.

 그는 공동창립자인 해든이 1929년 병으로 요절하자 홀로 타임을 이끌며 「포천」(1930),「라이프」(1939)를 잇따라 창간하는 공격적인 경영을 펼쳤다. 타임을 최고의 권위지 반열에 올려 놓은 언론계의 「신데렐라」 루스는 67년 2월 당시 68세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권대익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