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뉴욕주 연방 하원의원인 빌 팩슨(43)은 이른바 잘나가는 미 정계 차세대 지도자중 한명이었다. 뉴욕주중에서 깡촌인 세네카 폴스 토박이인 그는 88년 첫 의회 진출부터 60%이상의 높은 지지율로 내리 5선에 성공한, 촉망과 신망을 한몸에 받던 40대 기수였다. 더욱이 당내 보수 소장파의 리더로서 94년 공화당 선거 돌풍의 주역으로 부상하며 차기 대권에 근접한 주자로 확고히 자리매김돼 왔다. 특히 96년에는 동료의원이던 수전 몰리너리와 결혼, 미 사상 첫 의원 부부로 세계적인 관심과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순박한 그의 선거구민들은 아칸소 「촌놈」인 빌 클린턴이 백악관에 입성한 것처럼 팩슨도 언젠가 대통령의 꿈을 펼 날이 올 것으로 확신하며 그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팩슨의 전격적인 정계은퇴 발표는 모두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또한 「가족과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라는 그의 사유는 더더욱 납득키 어려웠다. 혹자는 팩슨이 공화당 보스인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을 축출하기 위한 모반을 시도하다 실패한후 그의 눈밖에 벗어나 정계에 남아 있기 힘들었을 것으로 분석하기도 했다. 어떤이들은 「정치밖에 모르는」 팩슨이 결국 은퇴 결정을 번복하고 다시 정계에 돌아올 것으로 지레 짐작했다. 하지만 선거구민을 직접 만나 이해를 구하고 있는 팩슨의 설명을 듣고난 후에는 대부분 양해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
팩슨의 말은 간단했다. 『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것이 인생의 전부구나」라고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루 24시간, 1년 365일 모든 책임을 감내하며 일에 전념할 수 있습니까. 그러고도 가족에 충실할 수 있나요』 그의 반문에는 주민의 대의자로서 마음의 틈을 보인 자신에 대해 용납치 못하는 결벽증같은 것이 배어있는 듯 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의회에 첫 도전할 당시에는 의원의 임기제한에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선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어느 직업에 종사하든 그 일에 필요한 효용성의 기한이 있다고 봅니다. 내 효용성이 끝나기전 떠나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유권자들이 쫓아내기 전에 말입니다』
한편 자신이 백악관에 입성하는 경우 「대통령의 남편」이 될 것이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던 그의 부인 몰리너리는 딸을 출산한 후 먼저 정계에서 은퇴, CBS방송의 토크쇼 진행자로 새 인생을 가꿔가고 있다.
새 정부의 총리 인준을 둘러싸고 구태가 재연된 우리 국회를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에 떠올려 본 미국의 「이상한 정치인 부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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