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이다 현실풍자극/내달 26일까지 동숭아트센터/아파트 공사장 꼭대기서/시위끝에 공사대금 받아낸 중기 사장의 실제 이야기 극작가 엄인희씨는 사회현실에 대해 즉각 발언해야 한다는 의식과 취재로 글을 쓴다. 그가 연출까지 맡은 「김사장을 흔들지 말란 말이야!」(5일∼4월26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027620010)는 아파트 공사현장 꼭대기에 올라가 시위끝에 3,500만원의 공사대금을 결제받은 중소기업 사장의 실화를 소재로 한다.본격적인 IMF 연극이다.
대학로의 연습실엔 여행가방 대여섯개, 서류가방, 박스, 골프가방 등이 가득 널려 있다. 배경은 호텔 꼭대기층. 중소기업인 개척정밀 김사장(공호석)이 아내(박남희)와 함께 들어온다. 가방들을 열어보면 기가 차다. 벽돌, 각목과 쇠파이프, 프로판가스, 망치, 드라이버 등 공구가 가득차 있다. 여기까지만해도 양반이다. 종이박스엔 화염병이 그득하고 사람 키만한 가방에선 LPG 가스통 2개가 나온다. 3차 부도위기에 처한 김사장이 꿈나라재벌(호텔도 계열사 중 하나다)의 불탄사에 물건을 납품하고 받은 어음을 현금으로 받기 위해 배수진을 친 것이다.
별별 사연이 많은 중소기업 사장들이 눈물로 호소하는 TV프로그램이나 자살을 했다는 보도는 IMF 한파에 휩싸인 요즘 흔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들의 죽음에 혀를 차지만 그렇다고 푼돈을 모아 서로를 도와주겠다는 뜻도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그래서 「살기 위해 죽으려 한」 김사장을 엄씨는 『내일 죽기 위해 오늘 피흘리는 싸움을 벌였을 뿐』이라고 단언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돈주머니를 들고 승리자처럼 돌아서는 김사장의 목 없는 실루엣은 그것을 강하게 상징한다. 『이제 빈부격차는 더 심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더 힘들어질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너도 나도 흥청대던)IMF 체제 이전처럼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고통에 길들여지는 것, 그것만이 남았을 뿐이다』 다각적으로 분석해봐도 돌파구가 없는 결론이라면 지식인은 괴롭다. 엄씨의 딜레마도 그것이다.
극중 「중소기업전문기자」(정진영)는 정경유착과, 대기업 중심의 불평등한 제도,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미국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IMF 협상내용 등 부조리한 현실을 진단하지만 진단으로 끝날 뿐이다. 그리고 「정신적 응급구조원」(〃)이라는 가상인물을 통해 전반적인 난국의 근원적 이유를 짚어보려고 하는데 역시 뚜렷한 전망이 제시되지 않는다. 다만 잠시 숨돌려 IMF시대를 어떻게 감내할지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10여년 전 연우무대의 「칠수와 만수」를 봤다면 사회풍자극으로서 서로의 같고 다른점을 비교할 수 있다. 소변을 보러 옥상에 올라갔다가 「투신소동」으로 오인받아 어쩔수 없이 뛰어내린 칠수와 만수가 80년대 민중의 초상이었다면 90년대 후반 김사장은 중산층의 피폐해진 모습을 대변한다. 『요구조건이 뭐냐, 자민투냐 민민투냐』며 칠수와 만수를 열사로 몰았던 기자는 「김사장…」에서 사표 내고 잘릴 걸 걱정하는 샐러리맨이 됐다. 여전히 사람들은 빌딩 꼭대기에 서 있고 사회는 이들을 흔들어댄다.<김희원 기자>김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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