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치품·해외여행 등 ‘고개’ 곳곳 긴장감이완 징후/재벌·금융계는 개혁보다 눈치보기·자리다툼만” 거리에 운행차량이 다시 눈에 띄게 늘고 있다. 해외여행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사치품수요도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난 연말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국민들이 보여주었던 긴장감이 이완되고 있다는 징후들이다. 그렇지만 잊어서 안되는 것은 아직도 외환위기는 그대로 살아있으며 언제라도 우리를 다시 궁지에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뉴욕외채협상으로 상환기간만 다소 늦추기로 했을 뿐 외채가 줄어든 것도, 외자가 유입된 것도 아니다. 올해 우리나라는 외채상환과 외환보유고 확충을 위해 약 680억달러가 필요하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구 지원과 민간차입 등을 포함해 조달가능한 자금은 약 380억달러에 불과하다. 결국 대략 300억달러가 부족한 셈이다. 새 정부는 이를 단기외채 만기연장이나 외화표시 국채발행등으로 메울 계획인 것 같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대폭적인 경상수지 흑자가 이뤄져야 하고 외국기업의 직접투자가 절실하다. 요컨대 달러가 많이 유입되도록 해야 하며 유출되는 것은 가급적 억제하는, 고통스러운 노력을 해야만 한다. 이같은 노력이 국제적으로는 이기적이라는 비난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대안이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나타나고 있는 국민들의 긴장감 이완현상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의 외환위기는 하루아침에 발생한 것이 아니다. 수년전부터 그 씨앗이 뿌려졌고, 이제 그 쓴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위기의 해소도 단시일내에 이룩되기는 어렵다. 외환위기의 주범은 궁극적으로는 그동안의 관행이었던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이다. 금융은 정부의 과보호하에 정치의 시녀로 전락해 막대한 부실채권만을 떠안고 경쟁력을 거의 상실하였다. 재벌은 권력을 등에 업고 차입으로 몸집키우기만을 계속해오다 지탱키 어려운 처지가 되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채권자들이 투자는 커녕 빌려준 돈마저 회수하려드니 위기가 닥쳤던 것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다시는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지금 필요한 것은 상황을 직시하는 일이다. 우리 일상의 이완도 문제지만 재계나 금융계가 보여주고 있는 개혁에 대한 태도는 더욱 한심하다.
정기주총에서 나타나고 있는 금융계의 인사를 보면 언제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었고 언제 은행들이 부실대출을 해주었던가를 망각한 것 같다. 최고 경영자로서 책임을 지겠다는 자정의 자세는 간데 없고 온통 자리보전과 다툼의 요지경일 뿐이다. 은행인사에 관여치 않겠다는 새 대통령의 의지가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준다. 재벌들의 행태도 마찬가지이다. 새 정권의 개혁의지를 저울질하는 지구전에 들어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외환위기는 정부의 몫도 크지만 금융기관과 재벌들의 방만한 행위로 저질러진 결과이다. 그래서 금융개혁과 재벌개혁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이러한 시점에 특히 강조되는 것은 금융에 대한 감시·감독의 강화이다. 스포츠에서 공정한 경쟁과 룰의 준수가 필수적인 것과 같이 금융에 있어서도 자율과 감시·감독은 불가분의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이 감시·감독이 소홀해지면 우리는 현 금융위기를 극복키는 커녕 또다른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아울러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금융기관들이 부실대출이나 파생상품등으로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 여부를 잘 감독해야 한다. 결과적으로 과다차입에 의한 재벌들의 부실도 막을 수 있다. IMF는 우리에게 돈을 빌려주면서 우리 경제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 감독하고 있다.
재벌개혁을 위해서는 기업의 투명성 확보, 상호지급보증 금지 등 「국민의 정부」와 대기업간에 이미 합의한 5대개혁을 차질없이 실천하도록 정책당국이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야 함은 재론 할 필요도 없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 외환위기로 인한 경제난의 고통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기업의 도산과 실업자는 더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부도대란 실업대란 그리고 산업대란의 가능성을 대비해야한다.
어느민족 어느나라도 엄청난 고통을 회피하고 개혁에 성공할 수는 없었다. 대공황의 미국, 80년대의 영국이 주는 교훈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통과 아픔이 따르더라도 개혁을 회피한채 이 파국의 위기를 이겨 낼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특히 가진 사람의 고통분담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들이 개혁의 저항세력으로 자라나지 않도록하는 것은 지도자의 강력한 리더십이다. 아직 한국은 긴장을 풀 때가 아니다. 외환위기는 휴화산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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