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카야마(강산)현 구라시키(창부)시에 소재한 야마자키(산기)제철 미즈시마(수도)제철소. 91년 6월 하순 6층짜리 본관 옥상에서 공정계장(41)이 몸을 던져 숨졌다. 그해 1월 계장으로 승진, 꿈에 그리던 간부의 길에 들어 선 지 반년도 지나지 않아서였다. 승진하기 전부터 잔업과 휴일근무에는 이골이 났지만 승진후 「책임감」까지 곁들여야 했다. 호경기를 맞아 「더 빨리, 더 많이」라는 독촉이 빗발쳤다. 아침 7시면 집을 나서야 했고 밤 12시가 넘어야 집에 돌아 올 수 있었다. 휴일은 꿈같은 일이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6개월간 집에서 쉰 날은 겨우 이틀이었다.
3월부터는 잠을 자면서 식은 땀을 흘리고 고열에 시달렸다. 불면증과 함께 우울증이 찾아 왔다. 회사 지정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우울증은 수그러 들지 않았다. 6월 들어 『일이 생각처럼 잘 진척되지 않아 죽고 싶다』는 걱정과 『내가 무슨 수레 끄는 말이냐』는 한탄이 길어졌다. 그리고는 무언의 항변일까, 회사 본관에서 뛰어내렸다.
그의 죽음을 두고 유족과 회사가 충돌했다. 유족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 우울증이 무지막지한 과로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회사는 근무시간에 대해 재량권을 가진 관리직의 과로가 왜 회사 책임이냐며 오히려 우울증은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맞섰다. 양측의 싸움은 법정으로 번졌다.
23일 오카야마지법 구라시키지원 하마모토 다케오(빈본장부) 판사는 그의 죽음을 「과로 자살」로 인정하고 회사는 5,200만엔의 배상금을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판결문은 스스로 알아서 하는 잔업, 즉 「서비스 잔업」 실태를 인정하면서도 『통상 노동시간의 2.3배에 이르는 과도한 상시적 「서비스 잔업」은 사회통념상 허용범위를 크게 넘는 것인데도 회사측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안전배려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또 『과로에 따른 심신의 피로가 우울증으로 발전, 충동적·돌발적인 자살을 가져왔다』며 과로와 자살의 인과관계도 확인했다.
한편으로 『관리직의 시간외 근무는 자기판단』이라는 회사측 주장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중간간부에게는 그런 노동조건 결정권이 없다』고 일축했다.
IMF 한파를 타고 불어닥친 「칼바람」 앞에서 보신주의와 「서비스 잔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온통 우울한 얘기만 들리는 나날이지만 제발 「일에 치인 죽음」의 소식은 겹쳐지지 않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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