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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상상력 따라잡기/하비에 알바(한국에 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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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상상력 따라잡기/하비에 알바(한국에 살면서)

입력
1998.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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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살인 큰아들 로빈은 이상하게도 「해골」과 「뼈다귀」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 영화의 등장 인물중에서도 착한 역보다는 악한 역을 좋아한다. 자라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생각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내 두 아들들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지않는 편이라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최근 깨달았다. 얼마전 아내가 로빈에게 저녁으로 닭다리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식사후 접시를 치우려고 보니 놀랍게도 남아있는 뼈가 하나도 없었다. 닭다리 뼈를 로빈이 먹어치울 리도 없는데 말이다. 나는 당장 그 아이 방으로 달려가 어떻게 된 영문인지 물었다. 하지만 로빈은 닭다리 뼈가 필요해서 가져왔다며 무엇에 쓸 것인지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아내에게 이야기했지만 아내는 큰 걱정 말라며 안심시켰다.

 다음날 로빈의 방 벽에는 전날 없어졌던 닭다리 뼈가 사람의 해골 그림에 팔, 다리로 씌어져 나란해 붙어있었다. 닭다리를 사람의 해골 다리와 팔로 응용한 아이디어가 놀라울 뿐이었다.

 로빈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 악한 배우의 복장과 가면, 총뿐 아니라 한국의 몽달귀신, 도깨비, 구미호등까지 그 영역이 무한한듯 하다. 어느날 내가 영화에 나오는 선한 역할의 사람은 왜 좋아하지 않는가 하고 물었을 때 로빈은 대뜸 진짜 힘을 가진 사람은 악한 사람이라며 그래서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영화의 결말은 늘 선한 사람이 이기고 악한 사람이 지는 것으로 끝나지만 이는 로빈이 갖고 있는 악한 사람은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생각을 바꾸기에는 무리였다.

 로빈은 학교에 가서도 마찬가지로 친구들과 함께 어둡고 기이한 그림과 놀이에 열중했다. 로빈은 결코 햇빛이 화창한 날, 파란 하늘 위를 새가 날고 파릇 파릇한 나무들이 울창한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항상 비가 오는 날, 앙상한 나뭇 가지만이 버티고 있는 다 쓰러져가는 집 주위를 박쥐들이 날고있고 해골이 점심 거리를 찾아 손에 큰 칼을 들고 창문 옆에서 기다리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난 아직까지 로빈의 기이한 취미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다. 자연스런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어른들은 모두가 나쁘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추하고 기이하고 어둡다고 쉽게 단정해 버린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 스스로 이런 것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또, 알고 있지 않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른다. 로빈의 행동을 통해 나는 기이하고 불가사의한 것에 대해서 나의 편견과 마음을 열어보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난 무서운 영화를 눈을 감지 않고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르네상스 서울호텔·스페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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