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총리 임명동의안에 대한 2일의 국회 표결처리를 앞두고 한나라당 입장이 바뀌지 않아 유감스럽다. 백지투표나 기권투표도 적법한 의사표시라고 변칙처리방침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국민회의나 자민련 역시 「처음부터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이유로 살신성인의 용단을 거부하고 있다. 결국 남는 것은 정치권에 대한 환멸과 정치에 대한 대중적 무관심 뿐이다. 거듭 당부하지만 한나라당은 무기명 비밀투표에 응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상식이다. 일부 동료의원의 「배신」이 우려된다고 자율적 선택권마저 뺏으려는 행위는 분명 잘못된 결정이다. 「김종필 총리」가 시대정신에 역행한다면 왜 떳떳하게 동료의원들을 설득하지 못하는가.
우리 헌정사에서 야당은 비록 소수였지만 명분에서는 항상 여당을 압도한 자랑스런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번 총리인준문제에서만은 그 빛나는 전통을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야당이 다수의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야당이 명분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지도부의 각성이 있어야 한다.
집권여당의 자세에도 문제가 많다. 여권은 「김종필 총리」가 대선민의라고 우기기에 앞서 승자로서의 아량을 보였어야 마땅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공약 가운데 총리 등 고위공직자의 청문회약속은 상당한 득표요인이었음은 부인 못할 사실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청문회」를 열었어야 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이 민주주의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김대통령같이 논리적이고 설득력을 갖춘 지도자를 가진 마당에 집권당이 두려워할 일이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지금이야말로 크로스 보팅(교차투표)을 정착시킬 호기라고 믿고 있다. 클린턴이 다수당인 공화당과 함께 국정을 차질없이 수행하고 있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없겠느냐 하는 바람이 그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여도 야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중시해야 한다. IMF의 어려움속에 기업도산과 대량실직이 이어지고 있는데, 김종필 총리안 인준 파동으로 국정 공백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집무를 시작했는데, 내각이 구성되지 못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마땅히 비밀투표라는 국회관례에 따라 총리인준안 표결에 임해야 한다. 어떤 명분을 내세우더라도 당소속 의원들의 자유의사를 물리적으로 막으려는 편법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하다.
여당도 가급적 야당을 포용하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지난 28일의 정부 조직법·직제개정안 전격공포는 부적절했다. 굳이 이런 식으로 야당을 자극해 얻을 것이 무엇인가. 여론몰이로 야당을 압박하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도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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