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정치권에 강도높은 자기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경유착과 금권정치의 한쪽 당사자로서 그동안의 고비용 정치구조를 감당해 온 재계가 이제 입장을 바꿔 스스로가 요구받는 개혁에 상응하는 정치개혁을 제기하고 나섰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는 26일 국민회의·자민련의 정치구조개혁위원회에 의견서를 내 향후 정치개혁에 대한 재계의 입장을 밝혔다. IMF체제가 아니더라도 우리 정치의 고비용 저효율구조 청산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돈을 물쓰듯하는 정치로는 경제의 깊은 그늘이 되고 있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을 수 없고 사회 각 계층의 이해대립과 갈등을 공정하고 원만하게 조정할 수 있는 정치력도 발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재계의 주문도 돈 안드는 정치를 해달라는 것이다. 정치자금은 제발 적게 요구하고 받은 돈은 투명하게 사용해 달라는 것이다. 제공자의 입장에서, 또 스스로 개혁을 요구받고 있는 입장에서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의원 지방의원 숫자부터 줄이고 돈드는 지구당제도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은 인구 49만2,000명당, 일본은 16만7,000명당 1명인데 우리는 15만8,000명에 국회의원 1명이라는 것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에서 1인당 10억원정도 쓴다고 해도 한 정당에서 소요되는 지역구 선거비용이 2,530억원에 이르고 결국 이는 국민과 기업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지구당만 해도 사무국장과 1,2명의 상근직원을 두고 지역구를 관리하려면 매달 2,000여만원의 돈이 필요한데 4년 임기에 10억원이 드는 부담을 안고 맑은 정치를 한다는 것은 숲에서 고기를 잡는 일만큼 어려운 일임도 수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정치자금 사용내역의 투명성을 위해 입출금에 대한 외부감사제, 선거자금실명제,정당자산변동 상황의 공개 의무화 등도 요구했다.
물론 재계의 이번 정치개혁건의가 여당의 요청에 의한 것이지만 미적거려 온 정치권의 개혁에 새로운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정치권도 모처럼 목소리를 낸 재계의 요구 뒤에는 절실한 국민적 요구가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 앞에는 정치 행정 금융 재벌등 숱한 개혁과제가 놓여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개혁, 정치권의 환골탈태가 선행되지 않고서는 다른 개혁도 따라주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돈 안드는 정치로 정경유착의 근원부터 끊는 것이 정치개혁의 제일 과제라는 재계의 해법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국민들의 눈엔 정치권만 너무 한가하다. 기업 근로자는 말할 것도 없이 일반 서민가계에까지 IMF구조조정의 고통을 요구하면서 정치권 스스로는 고통을 외면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재계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여 이제 정치권이 고통분담을 솔선수범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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