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자양 추천 상해 당서기 발탁 강택민과 인연 26일 중국총리에 공식임명된 주룽지(주용기)는 덩샤오핑(등소평)을 도와 현대 중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완성한 「중국경제의 현장감독」으로 통한다. 지난해 2월 사망한 등이 중국경제의 설계자였다면 주총리는 설계도면대로 경제개혁을 완성한 현장감독이란 뜻에서 붙여진 별명이다. 최근에는 「제3의 장정」으로 비유될 만큼 정치 경제개혁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금융의 부조리를 일소하겠다는 일념으로 금융개혁에 착수했다. 선전(심)증시 조작혐의으로 선전개발은행장을 파면하고 95년 상하이(상해) 국제증권, 96년 중국신용투자은행, 지난해 중국 농업개발신용투자사를 페쇄했다.
93년 리펑(이붕)총리로부터 경제분야업무를 넘겨받은뒤 당시 25%에 달하던 인플레율을 1년만에 3%미만으로 떨어뜨리고 10%에 육박한 강력한 경제성장, 외환보유고의 기록적인 증가, 세계 2위의 외국인투자유치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이때 지방정부의 대형사업계획에 제동을 거는등 강력한 긴축정책을 추진, 인심을 잃기도 했다.
주총리가 중국정계의 실세로 부상한 것은 87년 자오쯔양(조자양)의 추천으로 상하이시 당서기에 전격발탁되면서 부터이다. 이때 당시 상하이 시장이었던 장쩌민(강택민)국가주석과 인연을 맺었다. 이듬해 상하이 시장을 거쳐 92년 10월 당 중앙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됐고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장을 역임한뒤 93년 경제담당 상임부총리에 임명되는 출세가도를 달려왔다. 주총리는 마오쩌둥(모택동)과 같은 고향인 후난(호남)성 창사(장사)출신으로 51년 칭화(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뒤 산업부 생산계획부서에 공직첫발을 디뎠다. 그러나 주총리는 57년 하방, 78년 복권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주총리가 산적한 경제개혁과제를 어떤식으로 풀어나갈 지 주목된다.<윤태형 기자>윤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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