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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국민시선 의식하라/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전문가 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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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야,국민시선 의식하라/장영수 고려대 교수·헌법학(전문가 진단)

입력
1998.02.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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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난의 위기상황에 행정공백은 안될말 정치과정 정상화시킨후 여 감시·견제역할 해야” 해방후 53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지 꼭 50년이 되는 해에 우리는 여야간의 정권교체를 맞이하게 되었다. 해묵은 열망이 실현된 것이다.

 하지만 옛 야당이 정권을 인수하여 새 정부를 구성하고 활동하는 데에는 아직도 여러 불안요인들이 잠복해 있으며, 그것은 새 정부에 대한 옛 여당의 첫 번째 도전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를 김대중 정부의 국무총리로 임명하는 데 동의할 것인지를 검토하기 위한 임시국회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불참함으로써 안건상정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현대 민주정치의 핵심은 여당과 야당 사이의 경쟁을 통한 보다 좋은 정치의 실현, 그리고 상호 견제와 통제를 통한 권력남용 방지에 있기 때문에, 야당이 여당의 의도에 반대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번 경우 신한국당의 행동은 몇 가지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첫째, 김종필씨의 총리임명을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국회가 국무총리 등에 대한 임명 동의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의 독단적 인사를 견제하고, 국민의 의사와 동떨어진 인물의 기용을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김종필씨는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김대중 후보의 러닝 메이트라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김대중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김종필씨가 국무총리를 맡게 되리라는 것은 대다수 국민이 인식하고 있었다. 물론 김대중 후보에게 투표한 국민 모두가 김종필 총리를 적극적으로 원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결과를 수용할 자세는 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둘째, 한나라당이 임시국회에 출석하지 않은 행동이 정당한가? 오늘날 민주적 의사결정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러나 다수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비록 결정은 다수가 내리더라도­다수와  소수가 서로를 존중하며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은 다수결의 필수적 전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임시국회에 아예 출석하지 않음으로써 의사정족수 미달로 총리인준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도록 만들고 말았다. 이것은 다수의 횡포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 새 정부의 조각을 가로막는 총리인준 거부는­특히 현재의 국가적 위기상황을 고려할 때­무책임한 것이 아닌가? 헌법상 국무총리 임명은 국회 동의를 받아야하며, 행정각부 장관 임명은 국무총리 제청으로 대통령이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새 정부가 출범되는 시점에서 국무총리 인준을 거부하면, 결과적으로 장관 임명까지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런 사태가 장기화하면 행정 공백이 우려된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 상황이 되면 법적 근거도 없는 총리서리, 또는 장관서리가 양산될 수 있으며, 대통령의 국가행위도 헌법상 절차를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한나라당은 이제 야당이다. 하지만 집권경험이 있는 야당이며, 원내 의석 과반수를 차지하는 거대야당이다. 이런 한나라당이 앞서 거론한 여러 무리함을 무릅쓰고 총리인준을 반대해야만 하는 이유는 또 어디에 있는가? 만에 하나라도 야당이 된 현재상황에 위축되어서 그런 것이라면 한나라당은 먼저 자신감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정치과정을 정상화시키고, 새  정부 조각이 완료된 후에도 정부와 여당을 통제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걱정해야 할 것은 오히려 야당이 된 한나라당에 대한 국민의 시선, 국민의 평가일 것이다.

 새 정부의 출범은 국민에게 기대 섞인 희망이기도 하지만, 불안과 우려도 적지 않다. 5년전 문민정부의 출범을 기뻐하던 결과가 어떤 것이었는가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때문에 우리 국민은 새 정부를 격려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않아야겠지만, 무엇보다 그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야당 역할은 매우 중요할 것이다.

 국민은 현재 여당 편도 야당 편도 아니다. 국민이 기대하는 것은 여당과 야당이 모두 나름으로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국정 수행과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되고 실현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여당과 야당은 서로를 서로가 동반자 관계로 인식하면서 경쟁할 때 경쟁하고, 협력할 때 협력하는 페어플레이 정신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만일 어느 한쪽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 결과는 우리 모두에게 불행한 역사의 반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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