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김종필 총리안 인준거부로 빚어진 국정 공백상태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 경제난국 속에서 김대중 새정부 출범에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실망하고 있다. 정치권의 구태가 되살아나는 모습에 이 나라 정치는 정말 희망이 없구나 하는 분노와 씁쓸함이 온 나라에 가득 차 있다. 여당일각에서는 이번 사태 돌파를 위한 궁여지책으로 총리서리제나 차관운영제 등의 방안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편법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벌써 이에 대한 위헌시비가 제기되고 있다. 우리는 원칙과 순리를 강조해 온 김대중정부가 그런 편법으로 국면돌파를 시도하리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27일 한나라당의 조순 총재와 박태준 자민련 총재, 이만섭 국민신당총재 등과 연쇄 영수회동을 갖는다. 극적인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까 하는 한가닥 기대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런 기대가 부질없다는 어두운 전망도 만만찮다.
이번 사태의 표면적 이유는 거야의 세과시 때문이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이 세 과시가 단순한 여권압박용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김종필 총리가 등장하면 당장 한나라당의 충청권과 대구·경북지역, 그리고 구여권 의원들이 당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당안에 팽배해 있다.
따라서 여권이 한나라당 다수의원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을 헤아리는 등 성의와 유연성을 보인다면 얽힌 정국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가 이미 지적했듯이 인위적인 의원빼가기나 표적사정의 「흔들기」가 없을 것임을 담보해 주는 것도 한 해결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김대통령이 조순 총재와 협상을 매듭지어 본들 이것이 궁극적인 타결책이 되지 못하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왜냐하면 조총재의 당내 위상이 의원들을 설득할 만한 입장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나라당은 심각한 지도력의 진공상태에 있다. 대선에서 1,000만표를 얻은 이회창씨는 외곽을 돌고 있고, 중간계파 보스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고 있다. 여야 총무회담에서 합의된 사항을 부총무들이 거부하는등 지도력이 실종된지 오래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당내사정으로 시간을 끌기에는 나라사정이 너무나 위급하다.
결론은 자명하다. 한나라당은 국가의 위기를 직시하고 하루 빨리 국회로 돌아가 총리인준 표결에 참가해야 한다. 여권 역시 야당의 반대의미를 곱씹어 봐야 한다. 필요하면 살신성인의 용단도 마다 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의 국정표류로 남는 것은 정치권의 공멸뿐이다. 여야가 한걸음씩 물러나서 역지사지하는 모습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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