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 중소기업 사장이 금고를 털려다 잡혔다. 그는 종업원 10명 정도인 조그만 회사 사장으로 밝혀졌는데 부채에 시달리다 못해 농협 금고를 털 결심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경찰에서 『왠지 억울하다』며 자신도 잘 모르는, 소위 IMF라는 것 때문에 갑자기 금리가 올라가고 원자재 수입이 안되면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빚만 자꾸 늘게 되자 정부에서 보상받을 수 있는 농협금고를 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지금 IMF에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크게 세가지이다. 긴축, 시장개방, 그리고 구조조정이다. 긴축을 하라든가 시장개방을 하라는 것은 우리가 잘 몰랐던 것을 가르쳐 주는 의미가 있으나 구조조정에 있어서, 특히 부실금융 개선이라든가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얘기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새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나쁜 줄 알면서도 우리 힘으로 고치지 못한 것을 IMF가 국가부도를 무기로 위협하자 할 수 없이 고치기로 한 것이어서 차원이 다르다.
어쨌든 이러한 IMF의 요구는 우리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는 마치 집주인이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장사를 너무 못해서 집세를 못내니까 장사 잘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듯 IMF도 자신들이 꿔준 돈을 하루 빨리 받아내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일뿐, 진정 우리가 잘 되기를 소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세들어 사는 사람이 장사를 잘해서 거꾸로 자신의 집을 사게 되는 것을 집주인이 바라지 않는 것과 같다. 집주인은 세들어 사는 사람이 언제까지나 집 살 능력은 안되면서 집세만은 꼬박꼬박 잘 내기를 바랄 것이다.
올해 IMF에 갚아야 하는 이자만도 200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한번도 이렇게 큰 폭의 흑자를 내본 적이 없는 우리로서는 필경 겁나는 일이다. 따라서 당분간 원금을 갚는 일은 엄두도 못내며 단지 이 땅에 외국인이 투자해 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중소기업의 기술 선진화이다. 물론 IMF는 우리나라 산업의 기술선진화를 요구하지도, 이를 도와주지도 않을 것이다. 중소기업 기술선진화는 대기업 제품을 세계시장에서 일등품으로 만드는 관건인 동시에 대규모 실직사태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새로운 고용 창출의 유일한 대안이다. 중소기업의 기술선진화를 위해서 우선 시급한 것은 현재 그들이 겪고 있는 기술적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이며 그것도 단기간에 해내야 한다. 여기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시켜야 한다.
우리나라 박사급 전문인력의 78%를 차지하고 있는 대학교수들의 잠재력이 중소기업 기술력 향상을 위해 발휘된다면 그 영향은 실로 지대할 것이다. 중소기업은 고급인력 부족으로 자체적으로 애로기술 해결을 위한 연구를 할 수 없을 뿐아니라, 경영자금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대학에 연구를 의뢰할 수 있는 여건이 못된다. 대학의 연구는 그동안 기초연구나 논문거리가 되는 과제에 너무 편중돼 있었기 때문에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현장밀착적인 연구를 하기 위한 준비가 안돼있다. 기업의 대학연구에 대한 불신이 그렇고, 미국의 박사후 과정이나 일본의 강좌제도가 없어 학위를 목표로 하는 연구인력 밖에 없는 현실이 그렇다. 또 대학교수들이 갖고 있는 「상아탑」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큰 장애요인이다.
올해 실직자의 수가 1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그 딸린 식구들을 감안하면 400만명 이상의 국민이 길거리를 배회하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들은 앞서의 중소기업 사장처럼 어떤 의미에서든지 IMF 희생자들이다. 이는 실로 엄청난 경제의 궁핍과 아울러 정신적 공황까지를 초래할 수 있는 숫자이며 여기에 대학 기업 그리고 정부가 「너」일 수 없으며 「나」일 수 없다. 부실금융 정리와 정경유착 근절은 IMF의 압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추진될 것이며 또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 우리를 IMF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것은 이러한 구조조정도, 더구나 긴축이나 시장개방도 아니다. 오로지 기술개발을 통해 우리의 제품을 일등품으로 만들어 수출을 늘리는 길 뿐이다. 여기에 대학교수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앞서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중소기업의 기술선진화에 앞장서야 한다. 우리의 후손들에게 우리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지 않은 지금의 IMF위기를 물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이는 일제시대에 맨손으로 총칼과 맞서 싸웠던 우리 선조들이 해낸 일에 비하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닌 일이다.<재료공학>재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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