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구각료 “자리만 지키는 거지”/“외국 금융계에 뭐라고 설명하나”/재경원·통산부 바꿔단 간판 흰천으로 가려 국무총리 임명동의의 무산은 정부 각 부처를 공황상태로 몰아 넣었다.
정부는 26일 고건 총리주재로 「국정공백대책 긴급관계장관회의」를 열어 현내각의 「당분간 유지」를 결정했고 이에 따라 각 장관들은 정상출근했으나 자리 지키는 일 외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새 정권하의 구내각은 헌정사에 또 하나의 진기록을 남기게 됐고 관가에서는 이를 「연장내각」이라는 별칭으로 규정했다.
■재정경제원은 당장 27일부터 도쿄와 뉴욕 등에서 시작되는 외채협상을 위한 국제로드쇼(외채만기연장과 금리조정을 위한 현지 설명회)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 고위 관계자는 『신정부가 정부구성마저 못하는 상황은 단지 국내정치 문제를 떠나 해외 금융계에 충격일 것』이라며 『해외에서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요구하는 각종 개혁조치들이 입법과정에서 과연 정부 뜻대로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을 품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번 국제로드쇼 대표단의 일원인 한 공무원은 『외국금융계 대표들에게 설명하기 곤란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며 『우선 명함부터 두 가지(재경원과 재정경제부)를 만들어 가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경원은 이날 청사 현관 벽에 재경원 간판을 떼고 재정경제부 간판을 달았으나 부처조직개편안의 공포가 미루어지는 바람에 이를 흰 천으로 가려놓는 해프닝을 벌였다.
■통일원은 이날 상오 장관 이·취임식을 취소하고 권오기 부총리가 정상 출근했으나 업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김석우 차관주재로 열린 실·국장회의는 새 장관 취임시 업무보고 및 인수·인계 작업 등을 논의했으나 별 내용없이 끝났다.
■외무부는 외교통상부로의 확대 개편작업이 중단됐다. 유종하 장관은 이날 상오 정상 출근, 하오에는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경축식과 재외동포 초청 리셉션에 참석했다. 신설될 통상교섭본부는 기존 통산부와 재경원으로부터 50여명의 직원을 전출받아야 하나 이를 위한 협의가 불가능하게 됐다.
■통상산업부는 통상교섭본부와 중소기업청으로 가야 할 66명을 결정하지 못해 해당부서 근무자들은 물론 부 전체가 업무 정지상태를 보이고 있다.
통산부 역시 간판은 산업자원부로 바꿔 달아놓고도 공식 출범하지 못해 천으로 간판을 가려놓고 있다.
■정보통신부는 강봉균 장관이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자리를 옮김에 따라 장관 공석사태를 맞게 됐다.
이에 따라 박성득 차관이 장관 직무를 대행하게 됐고 박차관은 이날 상오 예정에 없던 간부회의를 소집해 행정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당부했다.
박차관은 『장관 공석기간중 장관 직무를 대행하겠지만 장관의 고유권한은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는 이날로 예정된 장관 이·취임식과 신임장관 취임축하 리셉션을 잠정 연기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동진 장관이 정상 업무를 수행하고 있어 별다른 문제는 없다』면서도 『군 조직의 특성상 새 장관의 취임이 지연되면 그만큼 위기상황 대응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공군참모총장 임기가 다음달 6일로 끝나게 돼 있어 국방장관 제청 절차가 시급하다.
■교육부는 늦어도 이달안으로 예고해야 할 99학년도 대학입시 및 수학능력시험기본계획 발표를 미루고 있다. 장관결재가 없기 때문이다.
수능시험 날짜와 출제방향, 대학입시 일정과 전형방법 등의 발표가 늦어지자 수험생과 학부모들로부터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세부입시계획을 발표해야 하는 각 대학에서도 연쇄적으로 일정에 차질이 빚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환경부 역시 어수선하기는 마찬가지다. 윤여준 장관은 이날 간부회의를 소집, 『중요 사안은 신임장관에게 보고하고 일상업무만 보고해 달라』고 당부한뒤 『1년간 일정으로 미국연수를 가려고 28일 항공편까지 예약했는데 모양이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이사장 교체와 인원축소가 예상되는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26일로 예정된 환경부 업무보고를 취소했다』고 말했다.
■건설교통부는 당초 신임장관이 부임하면 시급한 대형 국책사업 관련 부처협의 업무와 직제개편에 따른 인사를 하려 했으나 일단 보류했다. 특히 신공항건설사업의 사업계획 조정, 외국인토지매입 규제완화 등은 관련부처와의 협의를 통해 시급히 마무리돼야할 상황이나 재경부, 산업자원부 등 관련부처마저 제자리를 못잡고 있는 실정이어서 신임장관이 올 때만 기다리고 있다. 이환균 장관은 이날 정상출근해 간부회의를 갖고 국장급 간부 전원과 오찬을 하기도 했으나 공식 업무는 하지 않았다.
■문체부는 『한 지붕 다섯가족에 가장이 없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푸념했다. 이날 상오 7시50분 출근한 송태호 장관은 이임식을 연기하고 상오 내내 집무실에서 「퇴임인사장」을 썼다. 서예가 심우식씨가 쓴 「문화관광부」 간판은 이날 하오 현관에 걸릴 예정이었으나 총무과에 그대로 보관됐다.
■법제처 장관급에서 직급이 하향조정된 법제처는 정부조직법개정에 따른 각부처의 직제조정으로 밤샘근무를 했으나 또다시 새 일거리가 생겼다. 총리서리체제의 적법성 검토였다. 법제처는 앞으로도 총리임명동의문제가 장기화 할 경우 많은 일거리를 새로 안아야 할 처지이다.<윤승용·김경철·권혁범 기자>윤승용·김경철·권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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