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단 과격시위 불구 30년 독재 수하르토정권 당장 붕괴가능성은 적어 국익차원 신중접근 필요” 우리나라와 함께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에 대해 내외신은 이 나라가 연일 당장이라도 붕괴될듯 보도하고 있다. 주인도네시아 한국대사관 국방무관으로 6년간 근무한 후 지난해 말 귀국한 필자로서는 이같은 보도가 인도네시아 사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은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세계에서 몇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자원이 풍부한 인도네시아는 우리나라와는 경제적 의존도가 서로 높은 국가이다. 이같은 점이 아니더라도 인도네시아 사태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하면서도 우호적인 자세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인도네시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시위가 잦은 것은 사실이다. 96년 한햇동안 수도권지역에서만 300여건이, 그리고 지난해에는 500여건의 크고 작은 시위가 발생하는등 거의 매일 시위와 소요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또 인도네시아의 시위는 정권교체등 정치적 목적보다는 빈부격차나 종교·종족갈등 등 사회적 요인때문에 일어난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의 시위도 다소 심각하기는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노사문제나 고물가로 인한 시위사태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어서 현지인들은 어찌보면 예사롭게 여기는 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시위가 국지적, 산발적으로 뚜렷한 구심세력 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일회성으로 끝나기 일쑤이다. 이는 그럴만한 조직력을 갖춘 야당이나 배후조종세력이 없기 때문이며 학생 노동자계층도 조직적으로 가담하고 있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반정부 시위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이들을 뒤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는 느낌도 준다. 96년 9월 수도 자카르타에서 발생한 시위를 예로 들어보자. 야당내 당권분쟁에서 비롯된 이 시위는 하도 격렬해 당장 수하르토정권의 종말이 오지 않나 하고 우리 언론을 비롯한 세계 언론이 앞다투어 취재경쟁을 벌인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러나 외국과의 관계, 특히 국가 또는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즉 74년 1월 일본의 경제지배에 대한 국민들의 반일감정이 폭발, 자카르타 중심가에서 사상 유례없는 과격시위가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적 피해 또한 엄청나게 컸던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정치 사회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전직 대통령들이 구속수감됐을 때 그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들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그들의 생활정서는 우리와 동떨어진 면이 많다.
우리 언론에서 단골메뉴로 다루어왔던 수하르토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설은 현지 언론이나 야당에서 보면 호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언론매체를 통해 크게 정치이슈화하지 않았던 것은 정부의 언론정책에도 원인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저버려서는 안된다는 다소 여유있는 국민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욱이 최근 재연되고 있는 일련의 과격시위로 30년 독재의 수하르토정권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리라는 전망은 현실성이 없다고 본다.
끝으로 인도네시아는 우리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큰 동반자이다. 우리 교포만도 1만5,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연간 교역규모도 70억달러에 달하고 있으며 직간접 투자규모 역시 100억달러를 상회할 정도로 우리와 경제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최근의 금융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위해 일본 정부는 19일 3,000억엔을 긴급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하는가 하면, 태국에서도 1,000여톤의 쌀을 무상으로 지원해주는등 구조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외신을 통해 시위사태만을 골라 이를 확대보도하고 있는데 이웃국가로서 진정한 우호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현지공관에서도 『우리나라의 언론보도가 과장된 측면이 있어 수출에 타격을 받고 있다』며 국내언론의 보도자세에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우리가 비록 국가적 어려움을 함께 겪고는 있지만 선진개도국으로써 여유있는 외교력을 발휘하여 우방으로서의 역할을 해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지금 인도네시아에서는 폭동과 같은 과격시위는 아랑곳없이 수하르토 대통령은 7선(5년 임기) 재선에 여념이 없을 정도다. 그는 하비비 과학기술부 장관을 후계자격인 부통령으로 내정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우리는 인도네시아의 시위사태의 추이도 예의주시해야 하지만 국익차원에서는 인도네시아의 후계체제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전 주인도네시아대사관 무관·예비역 육군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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