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 우선과제는 부실금융·기업의 정리/강력한 특별위 만들어 신속하게 처리해야” 온 국민의 기대속에 어제 새 정부가 출범했다. 역대 정부 모두 나름대로의 과제를 안고 출범했지만 이번 정부는 특히 임기중에 세기의 변화를 맞고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를 구해내야 하는 무거운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제를 잘 풀어나가기 위해서 새 정부는 무엇보다 행정에 능한 정부가 되어주길 바란다.
IMF와의 합의에 의해 이제 우리 경제정책의 대체적인 윤곽과 목표는 이미 정해져 있다. 따라서 지난 정부들에서처럼 경제정책 방향을 놓고 오랜 논쟁을 벌일 필요는 이제 없다. 또한 새 정부는 막강한 국제적 압력하에서 계획된 개혁을 추진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만큼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있어서의 정치적 어려움도 덜한 편이다. 다시말해 이번 정부에서 가장 역할이 기대되는 사람들은 경세가나 정치 고수들이라기보다는 결단력과 사명감을 가지고 고도의 행정기술을 발휘하여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개혁과제들을 오차없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유능한 행정가들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위기적 상황은 일반 국민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의 실력을 훨씬 웃도는 씀씀이를, 그것도 약 10년동안을 누려왔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앞으로 우리가 지불해야 할 청구서 또한 만만치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실로 지금 우리의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실정도는 상당히 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는 단순히 은행과 종금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고 거의 전 금융기관에 걸쳐 있으며 대재벌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상당부분 부실화해 있긴 마찬가지다. 우리가 작금의 외환위기를 맞게 된 것도 바로 이런 기업과 금융부실화가 가장 근본적인 요인이 되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금융부문이 정상화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시 기업의 건전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아무리 국가가 재원을 투입하여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자본금을 늘려준다고 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기업의 부실과 재무구조를 두고서는 금방 다시 금융이 부실화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 경제회복의 관건은 이른 시일내에 부실 금융기관을 정리함과 동시에 대폭적인 기업의 채무구조조정(Corporate Debt Restructuring)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말은 쉬우나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그야말로 우리 경제를 뒤흔들어 놓는 작업이 될 것이다.
우선 부실의 규모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동원해야 할 재원의 양이 엄청나고 또한 부실은 거의 전 금융기관에 퍼져있기 때문에 이를 정리해 나가기 위한 행정적인 부담 역시 엄청나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상황은 이 문제에 대해 정면대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외환위기를 맞았던 어떤 나라도 금융부문 정상화 없이 경제가 회복되지는 않았다. 또한 그들의 경험을 보면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기대와는 반대로 시간은 오히려 부실의 규모를 더욱 크게 하여 결과적으로 국가로 하여금 더 많은 비용을 치르게 하였다. 이렇게 어려운 과제에 정면으로 부닥쳐서 고도의 정책기술을 발휘하여 민간부문의 구조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정부가 우선 해야 할 몇가지 일이 있어 보인다.
첫째, 새 정부의 조직은 이러한 과제를 강한 추진력을 갖고 풀어 나가기에는 너무나 미흡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조직의 보완책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부실정리 특별대책위」 같은 한시적인 기구를 만들어 예산, 금융감독, 국고, 예금보호, 부실자산처분등 새 정부의 여러 조직에 흩어져 있는 관련 기능들을 이 기구에서 일관성 있는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신속히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
둘째, 어차피 이 문제를 처리하는데에는 우리의 전문적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부족하며 외국기관이나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할 형편이다. 따라서 정부는 외국 전문가들의 경험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내부조직의 유연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기업과 금융의 부실정리는 엄청난 사회적 갈등과 긴장을 수반하고 이해집단의 거센 반발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초기에 부실정리의 전과정에 대한 분명한 실천계획을 마련하여 이를 대내외적으로 홍보하고 정리과정에서 갈팡질팡하게 되는 소지를 미리 없애는 체계적인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많은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경제위기는 끝나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제 막 시작일 뿐이다. 새 정부는 수미일관하는 유능한 행정과 관리로 이 위기를 극복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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