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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한승원 소설가(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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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을 보고/한승원 소설가(아침을 열며)

입력
1998.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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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 하늘인 서민의 대통령으로 그 의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슴 두근거리며 지켜보았다.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운명의 길을 걸어온 대통령. 한이 너무 많은 사람한테 정권을 맡겨서는 안된다며 수많은 기득권 세력이 쳐놓은 가시철망과 묻어놓은 지뢰숲을 헤치고 마침내 일어선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식.

 『…2000년대를 목전에 두고 전세계 국가들이 정보화시대라는 새로운 세계환경에 부응하여 발빠른 변화를 경쟁적으로 모색하고 있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우리 나라는 어쩌다가 외환위기에 발목을 잡혀 몸부림치고 있는지…』

 취임사의 여러 대목에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뜻있는 국민들의 한 표 한 표가 모여 이루어낸 수평적 평화적 정권교체.

 「바뀐 세상」이라는 배를 이끌고 외환부족 사태로 일어난 격랑을 헤쳐갈 우리들의 새 선장에 대하여 선원들은 부풀어오른 감격이 너무 커서 짧은 세 치의 혀만으로는 축하의 말을 어떻게 다할 수 없다.

 국민들은 새 국민정부 출범의 경축 분위기 속에 들떠 있을 만큼 마음이 넉넉해 있지 않다. 여기저기에서 다이나마이트처럼 터지는 부도, 어느 회사 어느 기업이 무너질거라는 소문, 3월 말쯤에는 정말로 큰 소동이 있을 거라는 설들로 말미암아 우리 착하기만 한 서민들은 안절부절 못한다.

 그런만큼 이번에 청와대로 들어가는 그분에 대한 우리 서민들의 바람과 기대는 하늘의 별이나 이 봄 산야에 지천으로 피어날 봄꽃들처럼 많다. 동양의 고전들은 인군들에게 하는 충고의 말들로 가득차 있다. 인군은 하늘의 뜻을 잘 알고 받들어야 하고 그 뜻에 따라 어질게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

 하늘이란 무엇인가. 밥을 하늘(식이천)로 삼고 살아가는 착한 서민들이야 말로 이 땅의 하늘이다. 서민들의 속마음을 읽어보면 하늘의 뜻이 보인다.

 새 대통령은 그 착한 우리 하늘의 뜻을 놓치지 않기 바란다.

 지금 우리 서민들은 절망하고 있다. 한겨울에 피워놓은 모닥불(희망)이 사그라들고 있다. 모닥불의 온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채 추위와 불안에 떨고 있다. 새 국민정부는 그 불을 새로 크게 지피고 서민들을 그 불의 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앓고 있는 중생들이 있는데 보살(어두운 세상을 위해 불을 밝히려는 사람)이 어찌 앓지 않으랴』

 이것은 혼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즐거워하는 자들에게 따끔한 충고를 한 유마의 말이다.

 모닥불 한 무더기없는 겨울 광야에 떨고 있는 병든 양들이 버려져 있는데 목자 혼자서만 어찌 움막 안에서 장작불 활활 피워놓고 단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새 대통령은 옥살이를 많이 하면서 절대고독을 씹고 또 씹은 분이므로 이미 모든 것을 다 계산하고 있을 터이지만, 나는 그분의 취임식을 보면서 정월 대보름달을 향해 액막이굿을 하는 무당처럼 이러한 소망을 지껄여댄다.

 많은 서책을 읽어서 동서 고금의 지혜에 통달해 있는 사람은 늘 「자기 오만」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우이겠지만 자기 오만은 독선에 빠지게 하고, 독선은 스스로를 드높은 성 안에 가두어 놓게 하고, 하늘(서민)의 뜻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독재자가 되게 한다. 그 오만은 또 무조건 「각하의 말씀이 지당합니다」하고 머리 조아리는 파들만 득세를 하게 할 우려도 있다.

 새 대통령은 부디 귓바퀴를 더 키우고 귓문을 더 넓게 열어놓고 서민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으려 애쓰기 바란다.

 세상을 이 파탄의 지경으로 몰아넣고도 반성은 커녕, 아직도 자기들 살아나갈 구멍만 뚫고 있는 기득권 세력, 재벌, 혹은 개혁을 두려워하는 저항 세력들은 「바뀐 세상」호의 정상 항해를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하고 있으며 방해할 것이다. 그들이 이제 진실로 참회하고 거듭날 수 있도록 잘 타이르고 다스려가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에는 국민들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모든 역량을 모아 협력하고 지역 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를 버리고 대승적인 화합을 통해 개혁을 이룩해야 한다. 그리고 민족 분단을 해소하고 통일을 이루어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께 드리는 축하의 말 한 마디로 이 글을 끝내겠다.

 『축하합니다. 부디 몸 조심하시고, 밥이 하늘인 착한 서민들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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