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는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 외교정책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다. 그중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일은 모두 한국과에서 맡아서 한다. 15명 가량의 직원이 일하는 한국과에는 남한, 북한, 그리고 제네바핵합의를 관장하는 3개의 계가 있다. 한국과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기도 하고 또 상당수가 주한 미국대사관 등 한국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한국문제 전문가들이다. 한국사람과 결혼한 이도 있어 한국에 대한 이해도가 웬만한 한국인을 뺨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워싱턴을 찾는 한국의 저명인사들이 『국무부 관계자를 만나 한반도문제를 논의했다』고 말할때 바로 이 한국과 직원들을 지칭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야당의 총재, 심지어 새 대통령의 측근조차도 한국과 직원을 만났다거나 식사를 함께 한 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여러가지 경로를 통해 한국과 직원을 만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는 경우도 있다. 장·차관은 고사하고 한국과를 책임지고 있는 찰스 카트만 동아태 부차관보나, 그 위에 있는 스탠리 로스 동아태 차관보를 만나는 인사들은 그리 많지않다.
이에 비해 그 반대의 경우를 살펴보면 극명한 「외교역조」를 실감할 수 있다. 워싱턴에 근무하는 주미 한국대사관 직원들이 미국의 정치인을 만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주미대사나 주미공사같이 직급이 높은 인사들의 경우는 좀 다르지만 미국 의원들은 좀처럼 미의회관계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우리 대사관의 의회과 직원을 직접 만나주지 않는다. 그래서 의회과 직원들의 주상대역은 의원보좌관들이 되고 있다.
한국 대사관 직원들의 말을 들어보면 『국무부 직원들중 서울근무를 하면 눈이 높아져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한 미국대사관에 근무하면서 서울에 있는 거물급 인사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보니 자연히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우리나라 공무원들에 대해서는 국장급 인사들도 잘 상대하려 들지 않는 정치인들이 외무부 직제로 따지면 과장급도 안되는 미국 공무원을 상대하는 셈이다.
국력의 차이가 워낙 심한 한국과 미국을 단순·수평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대단한 무리임에 틀림없다. 쓸데 없이 높은 사람을 만나서 실속없는 얘기를 나누는 것보다는 한국문제에 정통한 한국과 직원을 만나 심도있는 의견교환을 하는게 낫다는 주장도 수긍할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을 찾는 사람들은 무역역조만을 입에 올릴게 아니라 한번쯤은 외교역조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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