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9월1일 잠실체육관에서는 통일주체국민회의가 뽑은 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신군부에 의해 정계에서 강제은퇴당한 3김씨는 수감, 가택연금 등 핍박이 최고조에 달했던 시절이었다. 하야한 최규하 전 대통령만이 취임식에 참석했다. 81년 3월 선거인단 투표로 당선된 12대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 때도 마찬가지였다. 88년 13대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식. 직선제가 부활했으나 낙선한 김대중, 김영삼씨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참석을 거부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만이 「후계자」의 손을 번쩍 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는 손을 놓자마자 자신에게 닥쳐올 운명을 예감하지는 못했다. 93년 14대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식. 대선에서 패배한 김대중씨는 정계은퇴 후 런던에 체류중이어서 불참했다. 이날 문민정부의 탄생을 축하한 노태우 전 대통령. 그 역시 손을 잡아준 사람에 의해 감옥에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민이 지켜본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이렇듯 「불완전」했다. 「반쪽」의 축제였다. 아니면 「기형」의 의식이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낙선자로부터 우러나오는 축하가, 또는 국민의 진심어린 축사가 없었다. 취임식은 또 「불안정」했다. 보내고 떠나는 두 사람간의 관계가, 거기에서 나온 치하와 격려가 진정하지 않았으므로 맞잡은 손을 놓기가 바쁘게 차별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현직은 전직을 「박해」했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 취임식은 한국 현대정치사의 왜곡과 불행을 보여주는 페이지였다.
오늘 국민은 15대 대통령 취임식장에서 「3김」과 노태우, 전두환, 최규하 전 대통령이 함께 자리한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생존한 전직 국가원수가 다 모인, 앞으로도 보기 어려운 장면일 것이다. 이회창 한나라당 명예총재가 참석하지 않지만 역대 취임식을 생각해 볼 때 의미있는 단상이다.
이들 여섯명은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에 가깝게 한국정치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서 있던 사람들이다. 때로는 동지에서 적으로,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협력관계에서 적대관계로, 서로에 의해 서로의 운명을 뒤바꾸는 길을 걸어온 당사자들이다. 그래서 오늘의 취임식 단상은 한국현대정치사의 파노라마요, 6인의 얽히고 설킨 영욕성쇠를 드라마틱하게 한 눈에 보여주는 무대이기도 하다.
「6인의 동석」은 이제 우리 정치가 더이상 물리적 변혁이나 정치적 탄압, 또는 보복이 존재할 이유가 없는 토양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국정치 대화합의 상징일까? 그 해답은 5년 후의 취임식장에서 보다 분명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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