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휴 은행감독원장이 DJ계좌 추적사건으로 23일 사직서를 냈다. 이경식 한국은행 총재는 외환위기책임을 지고 지난해말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다. 말이 사퇴지 누가 봐도 경질이다. 중앙은행의 두 축인 한은과 은감원이 동시에 지도부 공백상태를 맞는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한은총재나 은감원장의 공통점은 모두 「임기직」이란 사실이다. 이총재는 임기가 1년6개월, 이원장은 2년반 남은 상태다.
역대 한은총재나 은감원장중 임기를 채운 사람을 꼽자면 열손가락도 필요없다. 특히 현 정부 출범후 김명호 전 총재는 지폐유출사건으로, 조순 전 총재는 YS와 불편한 관계로 각각 중도 하차했다. 은감원의 김용진 전 원장은 임기중 행조실장으로 「영전」됐고 이용성 전 원장은 정부의 인사구도에 따른 「밀어내기」로 퉁겨져나갔다. 이유야 어디에 있든 「임기직기관장」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수 없다.
대과가 없는 한 법으로 재임기간을 보장하는 게 임기직이다. 물론 과오가 있으면 임기보장원칙은 작동되지 않는다.
똑같이 대통령이 낙점하는 자리이면서도 임명직과 달리 굳이 임기직을 두는 까닭은 그 자리가 반드시 임기보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일관돼야 하는 자리, 항상 엄정중립만이 있어야 하는 자리, 즉 탈정치성이야말로 임기직의 첫번째 존재이유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그린스펀 의장을 보자. 공화당정권이 임명한 사람이지만 정치적 통화정책은 강력히 거부했고 여전히 공화당지지자이지만 민주당정권에서까지 연임을 이어가고 있다.
임기직 만큼은 임명권자라 해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없다. 당사자 역시 그 누구의 정치적 요구도 뿌리칠 수 있을 만큼의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임기직이면서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한다는 신화를 깨는 것이야말로 새 정부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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