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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왕국’ 이야기/홍선근 국제부 차장(앞과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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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의 왕국’ 이야기/홍선근 국제부 차장(앞과 뒤)

입력
1998.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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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국가, 부채기업, 빚진 건물, 빚진 아파트, 빚만 남은 호주머니. 온통 빚이다. 빚의 이자를 감당못해 아파트를 헐값에 내놔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아파트뿐 아니라 건물 기업 등을 팔아 빚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애써도 거의 속수무책인 「빚의 왕국」이다. 벗어나려고 아예 이 세상을 뜨는 사람, 혹은 목숨걸고 10억, 100억을 훔쳐 달아나는 사람. 빚으로부터의 탈출방식이 이렇다. 빚의 왕국에서 유일하게 더욱 떼돈을 모으는 실체가 있다. 「뭉칫돈」이다. 이자는 2배로 올랐고 세금은 절반으로 깎였다. 이자를 올린 건 국제통화기금(IMF), 세금을 깎은 건 이 나라에서 법을 만든다는 국회의원들이다. 여·야 는 지난 대선직전 금융종합과세를 포기, 뭉칫돈 세금을 40%에서 22%로 대폭 줄였다.

 마치 머리부위와 몸통뼈, 가시만 남은 생선처럼 나라의 소득구조가 극도로 기형화했다. 뭉칫돈이 고소득층으로서 머리를 구성하고 나머지 중산층과 하층의 소득은 오그라들어 몸통뼈와 가시만 남아있는 형국이다.

 소득이 메말라가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직장 부도로 담보제공한 집마저 빼앗기고 무일푼으로 일자리를 잃는 중소기업 최악형, 제집은 잃지 않지만 퇴직금은 없이 쫓겨나는 무퇴직금형, 퇴직금은 받는 보통형, 퇴직금에 약간의 웃돈을 챙기는 명예퇴직 우대형, 월급은 깎이지만 일자리는 유지하는 감봉형 등이 또 나름대로 서열을 이룬다. 무퇴직금형은 『아, 퇴직금이라도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보통형을 부러워하고 보통형은 또 『명예퇴직금을 챙길 수 있을 때 떠나는 건데』하고 아쉬워한다. 세상은 정말 망하는 데서도 공평하지 않음을 절감한다.

 이 험고의 시절에도 일부 정치인들은 제돈 챙기기에 바쁘다. 정치권에서 기업이 내는 법인세중 1%를 정치자금으로 떼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들려온다. 사실여부를 떠나 발상 자체가 참으로 제 수준이다. 그냥 봐넘길 수가 없다.

 나라가 안팎의 「화적」을 만나 IMF사태라는 구렁텅이에 빠져 기업이 다 쓰러지는 판에,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엔 피땀으로 그 기업을 키워온 기업주까지 자살로 몰고가 「기업이 사람을 잡아먹는」 판에 깎아주지는 못할 망정 기업에서 정식으로 「정치세」를 떼겠다니. 정당이 마치 정부인 양 세금을 거두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그것도 이 판국에. 굳이 거두려거든 세금을 깎아준데 가서 거둬라. 뭉칫돈한테 가서 『떼돈 벌겠다, 세금은 절반으로 깎아줬겠다, 그러니 돈 좀 내놓으라』고 하면 혹시 한움큼 집어줄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난망이겠지만 정작 정치권의 올바른 처신은 망가진 금융종합과세를 원상회복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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