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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가 되어주소서/봉두완 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화요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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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가 되어주소서/봉두완 광운대 교수·신문방송학(화요세평)

입력
1998.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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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서는 국민의 정부 IMF에 떠밀린 모두에 평화의 집 지어주고 훗날 영광속에 떠나길” 겨울은 가고 봄은 온다.

 YS는 가고 DJ는 온다.

 강이 풀리고 땅이 풀리고 우리들 마음에 차갑게 응어리진 것들이 풀린다. 봄은 이렇게 모든 것을 풀면서 온다. 새롭게 태어남의 영원한 빛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빛이 있으라!』

 그러고 보니 떠나는 YS는 겨울이고 우리 앞에 꿈을 안고 다가오는 DJ는 봄인가. 내일은 이 땅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새로 선다. 남산 봉화대에 「희망의 불꽃」이 타오르고,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화합과 도약의 팡파르가 울려 퍼진다.

 김대중 신임대통령이 단상에서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들을 환송하며 단하로 내려온 다음 이임하는 김영삼 대통령을 환송하기로 되어 있다.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기를 기약하며 이렇게 헤어지는 것일까. 인간이 서로 풀지 못할 그 무엇이 있으랴. 생각하면 화도 나겠지. 하지만 화난 마음도 풀고, 맺힌 한도 풀고, 뒤틀린 감정의 골도 풀자. 봄은 화해의 계절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는 겨울에 손을 흔들고 꿈을 안고 찾아오는 봄에 입맞춤을 하자.

 전국에서 모은 흙과 물을 뿌리는 기념식수행사, 남과 북의 흙, 팔도강산의 흙이 한데 섞이고, 물과의 만남을 통해 아름다운 화해를 이루는 행사다. 그렇다. 모래알처럼 제각기 흩어져 뿔뿔이 살아온 어제의 역정이 있다면, 등돌리고 반목하며 살아온 아픈 역사가 있다면, 이제 그 모든 것을 풀고 끈끈한 황토로 다시 섞여 내일의 한국을 생명답게 키우는 밑거름이 되자.

 지난 14일 상오 명동성당에서 열린 「나라와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를 위한 축하미사」에서 그는 말했다.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기게 하고 이처럼 살려주시어 대통령까지 되게 하신 것은 이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라는 뜻…』이라고.

 특히 김당선자는 이날 자기와 싸웠던 이회창 한나라당 명예총재가 참석해준데 대해 감사했다. 물론 이회창씨는 아직 심기가 불편했겠지. 하지만 신앙 앞에선 여야가 따로 없고 은인과 원수가 따로 없음을 이들은 깨끗하게 보여주었다. 『평화를 빕니다』 이회창씨가 손을 내밀었다. 김대중당선자는 보기 드물게 이회창 명예총재의 손을 높이 올리며 1,500여명의 신자들, 아니 온 국민과 더불어 그의 적수에게 빛나는 영광이 있기를 빌었다.

 아직도 국회에서는, 여와 야로 갈리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이들은 그날 고난의 십자가와 스스로를 불태워 세상을 밝히는 촛불을 응시하며 화해와 일치를 기구했으리라. 그리고 5년후를 머리속에 그리며 묵상했으리라.

 『영광의 시간은 짧고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는 YS의 이임사를 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불행한 역사, 불행한 대통령이 다시는 이 땅에 등장하지 않기를 빌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도 헤아렸을까.

 「등을 돌리면 그리운 날들」이라는 시집을 펴낸 이명수 시인은 우리로서는 부러운 남의 나라 전직 대통령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에게 목수가 되라고 타이르고 있다. 목수는 집을 짓되 집이 완성되면 집에서 떠난다면서, 지미 카터는 집에서 나와 떠도는 이들의 집을 지어주는 목수가 되었지 않느냐고. 예수의 아버지 요셉도 목수가 아니었더냐고. 그런데 세상엔 세상의 집들을 자신의 집으로 바꾸는 그런 사람도 있다면서, 그는 『아들아 목수가 되어라』라고 타이른다. 「하늘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라고 외치며 집을 짓는 목수, 집이 되면 떠나는 목수가 되어달라고 당부한다.

 IMF한파에 떼밀려 추운 거리를 떠도는 이들이 줄을 이을 우리의 현실에서 집은 무엇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청와대란 집에서 떠나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의 만감이 교차할 오늘, 우린 과거와 미래의 집주인들을 생각해 본다.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지도자. 그의 권력이 사라지고 그 지배의 후광이 지하에 묻힌 후에라도, 태양처럼 날로 새롭게 떠오르는 지도자. 생일날의 축하케이크보다는 기일 꽃다발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그런 지도자를 우리 모두는 지금 이렇게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모두에게 영광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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