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렴의 대부분이 세균 때문에 발병한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은 1880년대, 즉 「세균학의 시대」부터이다. 1881년 파스퇴르는 나중에 폐렴구균이라고 이름지어진 병원균을 폐렴환자의 침에서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2년 뒤 프리드랜더는 몇몇 폐렴환자의 폐에서 파스퇴르가 발견한 것과는 다른 종류의 폐렴균을 분리해 냈다. 1884년에는 프랜켈이 폐렴구균이 어떻게 폐렴증상을 일으키는지를 밝혀냈다. 이 선구자들의 업적을 뒤이어 여러 학자가 10가지도 넘는 폐렴균들을 분리하고 그 세균학적, 병리학적 특성들을 규명했다. 1차세계대전 중에는 록펠러연구소등이 여러 폐렴균의 아형을 결정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예컨대 폐렴의 원인 가운데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폐렴구균에는 제1, 2, 3, 4형 따위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더욱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폐렴의 정체가 거의 분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세균학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치료술은 놀랄 만큼 구태의연했다. 1920년대까지도 히포크라테스 이전부터 사용하던 사혈법이 쓰였다. 독한 구토제도 여전히 훌륭한 치료법으로 여겨졌다. 병이 위중할수록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는 전통적인 생각 때문이었다. 그밖에 염화수은, 모르핀, 스트리키닌 따위가 자극등의 목적으로 사용됐다. 독소를 씻어낼 것이라는 기대로 하루 7∼8ℓ의 물을 섭취하게도 했다. 「과학적 진단」과 「전통적 처방」이 뒤섞여 있던 셈이다.
그러나 머지 않아 치료술도 많이 발전하게 됐다. 원인균과 그 아형을 확인하게 됨으로써 적절한 항 혈청이 개발됐다. 가장 주목할 일은 페니실린등 항생제의 등장이었다. 아직 완전히 퇴치된 것은 아니지만, 이로써 폐렴은 인류사회를 위협하는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황상익 서울대의대 교수·의사학>황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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