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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지자체 이관 재고를/황수영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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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지자체 이관 재고를/황수영 전 국립중앙박물관장(특별기고)

입력
1998.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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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국립박물관은 중앙과 9개 산하 지방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상호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고유업무인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 전시, 연구, 홍보및 사회교육기능을 하는 한편 각종 해외전시를 통해 우리나라의 참모습을 알리는 데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다가올 21세기가 문화의 세기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각국이 전통문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를 독특한 문화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민족의 가시적인 문화유산을 보존·전시하는 박물관의 역할은 21세기를 대비하는 시점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어 가고 있다. 미국 국립박물관인 스미소니언은 산하 14개 박물관과 동물원및 4개 지역연구소에 약 6,000명의 직원과 5,000명의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고 있으며, 일반 박물관을 위한 「박물관서비스연구소」도 있어 연방정부예산의 0.17%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방 국립박물관들은 모두 80년대 이후에 평등한 문화향수권의 부여를 위해 설립됐으며, 나름대로 부족한 인원과 예산에도 묵묵히 고유 목적을 수행하면서 지방주민들에게는 쉽게 찾을 수 있고 경제적 부담이 가장 적은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정치적 목적이든 국민의 문화향수권 확대를 위해서든 현재 건축중인 지방박물관이 2군데, 이전확장 및 신축을 계획하고 있는 박물관이 3군데에 이른다.

 그러나 경제적 문화적으로 성숙되지 않은 지방자치제 아래에서 지방국립박물관을 지자체로 이관한다면 각 박물관은 우선 경제적 측면에서 각종 현안사업에 밀려 그 기능을 다할 수 없다. 또 문화재 보존과 관리라는 측면에서 국립박물관을 지자체로 이관하게 될 경우 첫째, 모든 매장문화재는 국유인 관계로 각 지방박물관은 귀속문화재의 보존관리를 1차적인 임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로 이관될 경우 지방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는 문화재는 중앙박물관으로 이관해야 하며, 이 경우 중앙박물관은 대대적인 유물보관시설의 확충과 전문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지방박물관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원래의 의도와 전혀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문화재보호법을 고쳐 매장문화재 관리를 지자체로 이관한다 해도 각 기관간의 이해다툼과 사업의 선후를 고려해 볼때 효과적인 문화재 관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밖에 없다.

 둘째,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은 각 지방박물관에 국가 비상시를 대비하여 약 5만점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문화재 관리는 결국 인력과 예산 문제를 수반하므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이를 반환하려 할 것이고 국가는 이를 보관 운용할 별도 시설과 인원을 충원해야 한다.

 셋째, 문화재와 문화유적 보호는 문화부장관 위임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각 지역에서 이러한 역할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전문 연구인력이 그나마 가장 많은 국립박물관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지방자치단체로 소속될 경우 지역개발논리에 밀려 문화재와 유적 보존이 부실화함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넷째, 각 지방박물관 전시품중 대표적인 유물 대부분은 국가소유문화재로 이들 박물관이 지방으로 이관되면 모두 중앙박물관에 반환해야 하므로 상설전시기능이 약해지고 특별전시도 사설박물관이나 개인소장가에 대한 신인도가 낮아져 수준이 형편없이 저하되거나 아예 불가능해질 것이다.

 다섯째, 지자체로 이관될 경우 전문연구인력들은 신분보장이나 업무 고유성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에 이직할 가능성이 매우 크고, 이러한 경우 연구직 직위를 전문성과 경험이 없는 인사들로 충원하게 되어 박물관 고유 기능이 크게 훼손될 것이며 부수적으로 문화재 파괴를 감시하는 역할도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로 경북지역에는 국립기관인 경주박물관과 대구박물관 외에도 각 대학 박물관 및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과 문화재보호재단소속의 발굴조사단이 활동하고 있으나 행정기관에 의한 무분별한 개발을 막기에 역부족이어서 뜻있는 시민들이 「문화재 지키기 시민모임」을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모임은 대구 수성구청이 「문화유적총람」에도 등재되어있는 고분군을 파괴하면서 폭포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을 목격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한 것이다.

 21세기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밑거름이 되는 전통문화유산의 보존과 계승이 필수적이다. 국가적으로 시행되어야 할 문화재 보존관리를 재정적·인력적으로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이관한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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