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작품당 가격제’전 등 잇단 염가·경매전 가격체계 변동예고/반발도 커 정착까진 시간걸릴듯 미술계 일각에서 불황타개를 위해 시도한 경매와 작품당 가격제등이 기존의 호당가격제를 흔들고 있다. 새로운 가격체계는 「거품빼기」식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뿌리 깊은 호당가격제의 폐습을 바로잡을 전망이다. 하지만 새로운 가격체계는 기존 컬렉터와 경쟁화랑으로부터 호된 비난을 받고 있어 새 체제정착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갤러리현대는 3월2∼22일 100여명의 국내외 작가가 참가하는 「호당가격 없는 작품전」을 마련, 호당가격제를 폐지한다고 밝혔다. 작품당 가격제를 받아들인 권옥연 김종학 김창렬 서승원 이대원 황영성씨등 유명작가 작품은 물론 소장중인 김흥수씨 등 원로작가의 작품도 조정된 가격으로 판매한다.
『불황기 이전까지는 작가가 작품가격을 결정했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컬렉터들이 작품을 반가격에라도 팔아달라고 가져오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호당가격제를 고집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먼저 시작하면 작품당가격제를 따라하겠다는 화랑도 많다』(갤러리현대 박명자 사장). 화상이 작품가격을 결정하는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얘기이다.
18일 경매에 부쳐진 150점 가운데 130점(낙찰금 7억4,000만원)이 팔린 동숭갤러리의 조각경매전에서도 가격체계의 변화조짐이 뚜렷했다. 최만린씨의 조각 「작업」(43×20×26㎝)은 시중가 550만원의 63%선인 350만원, 「태」(77×66×67㎝)는 시중가 900만원의 83%선인 750만원에 낙찰됐다. 『같은 작가의 작품도 낙찰가가 천차만별이었다. 작품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것은 경매의 원칙이다』(동숭갤러리 이행로 사장). 이 화랑은 3월초 회화작품만으로 제2차 경매를 실시할 예정이다. 화랑협회도 경매제 도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상황이어서 미술품의 가격체계에 일대 변동이 예상된다.
호당가격제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불황에 시달린 일부 대형화랑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염가전을 시작하면서. 국제화랑의 「사일런트 세일」전, 갤러리현대의 「판화전」등이 주도한 일련의 가격파괴는 일반인에게 「그림값이 내려갔다」는 인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때문에 화랑협회에는 이 화랑들의 제재를 요구하는 항의가 빗발쳤고 화랑간의 반목도 심해져 결국 노승진 화랑협회장이 임기를 2년이나 남겨두고 19일 중도사퇴하기에 이르렀다.
작품당 가격제에 대한 비난도 적지 않다. 한 화랑대표는 『불황 이전에 작품을 비싸게 판 것도 결국 화랑이다. 이제와서 새로운 가격제를 시행한다는 것은 컬렉터를 우롱하는 처사다. 화랑마진을 포기하더라도 기존체계를 고수하는 게 컬렉터와 작가를 보호하는 일』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불황에 찌든 화랑이 새 활로로 선택한 경매와 작품당가격제. 화랑과 미술애호가들이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지만 하루 아침에 반값으로 폭락한 미술품을 갖고 있는 컬렉터와 화랑에겐 여간 짐스러운 게 아니다.<박은주 기자>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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