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변화와 개혁 남은건 ‘불만과 불신’/결산 문민정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변화와 개혁 남은건 ‘불만과 불신’/결산 문민정부

입력
1998.02.23 00:00
0 0

◎정치/‘옳은일에 누가 반대’식/감정적 국가경영 국정·국민 함께 표류 김영삼 대통령은 20일 이임에 즈음한 「국민께 드리는 말씀」에서 『지난 개혁의 결과를 되돌아 보면서 정말 「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을 절감한다』고 말했다. 「변화와 개혁」을 국가운영의 방향이자 기본철학으로 집약했던 문민정부가 5년 동안 겪었던 갈등과 한계를 극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변화와 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문민 리더십의 가장 중요한 무기는 명분과 당위성이었다. 「옳은 일을 하려는데 감히 누가 반대하고 방해할 것인가」 김대통령과 개혁세력은 오로지 이 논리만 앞세우면 거침 없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치밀하고 구체적인 개혁프로그램, 이를 뒷받침하는 정교한 논리가 부족했다. 기득권 세력의 엄청난 저항과 반발에 대한 인식과 대비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방식과 절차」라는 기술적 문제에서 치명적 맹점을 드러내면서 대부분의 개혁이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중도하차해 버렸다. 결국 문민 5년의 대부분은 김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서만 통치되는 결과가 되고 말았다.

 김대통령은 한국인과 한국사회의 이중구조를 냉철히 따져보고 대처하는 조직적 사고가 약했다. 김대통령은 자주 『모든 국민이 개혁을 하라고 하면서도 막상 개혁이 자신에게 닥치면 강하게 거부한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이러한 탄식에 앞서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사회 분위기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토대로 정책결정을 내리는 지도력을 갖추어야 했던 것이다.

 김대통령은 국가경영을 감정적 차원에서 접근한 면이 적지 않다. 이른바 표적사정이니 즉흥 인사 시비가 그것이다.

 김대통령은 문민정부에 대한 평가를 훗날 역사에 맡기자고 말했다. 청와대의 한 핵심참모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대부분은 결과 지상주의자였다. 누구도 명분과 당위성 등 국가의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 하지 않았다』며 『그런 면에서 김대통령이 앞으로 새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고 믿는다』고 기대했다.<손태규 기자>

◎현철씨 국정개입/아들 입김에 ‘인사가 망사’/인사관여·정보장악 마치 ‘1인 안기부’/공조직 약화 불러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국정개입은 YS정권의 깊고 어두운 그림자였다. 헌정사상 현직 대통령 아들의 첫 구속이란 오점을 남긴 「김현철게이트」는 사조직에 의존했던 김대통령 통치방식의 상징으로 꼽힐 만하다. 현철씨의 막후정치는 YS정권 전반에 막대한 폐해를 야기했다. 대통령의 아들이 국정전반에 폭넓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현철씨의 국정개입은 그러나 집권세력내 핵심 주도세력의 공백상태로 인해 자초된 측면도 있었다. 초기 전병민씨의 몰락을 이와 관련짓는 해석도 있다.

 어느 경우든 대통령 친·인척의 국정개입은 필연적으로 정권구조의 왜곡을 불렀다. 현철씨는 92년 대선과정에서 김대통령의 1급 참모로 부상했다. YS정권 출범 이후에는 명실상부한 2인자의 위치를 구축했다. 민주계 가신들도 만나기 어려운 김대통령을 수시독대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주요 인사자료는 현철씨의 점검을 받아야 했다. 현철씨를 거친 뒤 김대통령에게 전달되거나 김대통령이 검토한 뒤 현철씨에게 넘겨지는 식이었다. 권력의 해바라기들이 현철씨 주변에 불나방처럼 모여든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인사가 망사가 돼버린 과정이었다.「현철 파워」의 또다른 원천은 정보력이었다. 모든 정보는 현철씨로 통했다. 「1인 안기부」에 진배 없었다. 사인 김현철에 대한 인사와 정보집중은 공조직의 약화를 초래했고, 이는 다시 현철씨의 영향력 배가로 이어졌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상도동 일부 가신들의 무능과 부패는 현철씨의 국정농단을 가능케 한 또다른 자양분이었다. 민주계가 지닌 집권세력으로서의 원천적 취약성은 정치와 행정의 난맥상을 부채질했고, 이는 현철씨에 대한 김대통령의 의존도를 더욱 높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이렇게 동반몰락의 길을 걸었다.<홍희곤 기자>

◎과거 청산/‘역사 바로세우기’ 대의 인적 청산 치우쳐 퇴색

 문민정부의 과거청산은 임기 후반부에 진행된 「역사 바로세우기」,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단죄로 구체화했다.

 95년 10월 민주당 박계동 의원의 폭로로 노태우씨의 비자금 은닉사실이 드러나면서 검찰이 곧바로 수사에 착수, 그 해 11월16일 노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로 구속수감됐다.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 사실이 확인되자 5·6공의 굴절된 역사를 청산해야한다는 국민여론이 비등했다. 결국 김대통령은 11월24일 5·18특별법 제정을 지시했고, 검찰은 서울지검에 12·12, 5·18 특별수사본부를 발족시키면서 본격 수사에 나섰다. 노씨에 이어 12월3일 전씨가 고향인 경남 합천에서 연행돼 구속됨으로써 과거청산 작업은 정점에 달했다. 전·노씨는 이후 1년3개월 동안 검찰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지난해 4월17일 대법원에서 반란·내란수괴, 중요임무종사, 뇌물 등 혐의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17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지난해 12월 대선 직후 특별사면·복권됐다. 이들과 함께 재판을 받았던 정호용씨 등 14명도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으나 이들 또한 사면·복권, 잔여형집행면제 등으로 모두 풀려났다.

 당초 김영삼 정부는 과거청산에 소극적이었다. 5·18특별법이 제정되기 넉달 전만 해도 검찰은 12·12, 5·18사건에 대해 「공소권 없음」 의 결정을 내렸다. 이 때문에 김영삼정부의 과거청산 작업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대의 명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애로를 돌파하는데 이용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 과거청산이 「인적 청산」에 치우쳐 군사정부에서 싹튼 잘못된 제도와 기구의 청산에는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김상철 기자>

◎군·정치권 사정/시퍼렇던 사정칼날 ‘표적’ 비난에 녹슬어

 김영삼 정권은 정치 경제 사회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요란한 개혁의 나팔로 시작됐으나 결국 총체적 실패를 겪고 말았다. 군내 하나회 해체, 금융실명제 도입, 정치사정 등으로 대표되는 개혁조치들은 의욕만 앞선채 방향감각을 상실했고 이는 집권5년 통치행태의 전형이었다.

 93년 2월 취임과 동시에 터져나온 공직자재산공개파동의 와중에 가장 먼저 사정의 칼날을 맞은 곳은 군부였다. 3월8일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의 전격경질로 시작된 군개혁은 하나회 인사의 강제전역과 보직박탈, 기무사축소, 해·공군인사비리 수사, 율곡사업 비리수사로 숨가쁘게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전직 국방부장관과 육·해·공군의 무수한 「별」들이 줄줄이 구속됐다.

 그러나 초기 군의 사조직과 정치장교 제거 측면에서 큰 호응을 받았던 하나회 척결조치는 곧 또다른 「신주류」의 등장으로 그 의미가 급속히 퇴색했다. 군 인맥과 정보가 취약했던 김대통령은 아들 현철씨와 권영해 국방부장관 등 소수 측근에 군개혁을 의존했으며 이는 결국 「현철인맥」으로 불리는 「K2(경복고)인맥」과 「PK인맥」이 하나회의 자리를 대신 메우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때문에 군 내부에서는 『문민정권동안 군 사기는 저하되고 군에 대한 정치권의 영향력은 더욱 심화했다』고 혹평하고 있다.

 정치권 등에 대한 사정도 군개혁과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문민정부의 사정드라이브는 93년 3월 동화은행 비자금사건을 필두로 슬롯머신사건, 12·12 및 5·18사건에 이어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사건을 거쳐 한보사건으로까지 집권기간 내내 이어졌다. 이로인해 전직대통령 2명과 현직 대통령아들을 비롯, 전·현직 국회의원과 장관, 청와대수석, 군 수뇌부, 은행장 등 차관급이상 고위공직자가 무려 50명이상 구속됐다.

 그러나 외견상 서슬퍼렇던 사정의 칼날은 실제로는 구정권의 실세에 대한 「표적사정」이라는 비난에 끊임없이 시달렸고 구속자들도 대부분 풀려나는 바람에 그 의미를 잃었다.

 결국 초기의 개혁정신은 개혁주체세력과 총체적 개혁프로그램의 부재로 인해 근본적인 제도개혁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평가이다.<윤승용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