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의정부지원 일부 법관들의 비리에 대한 대법원의 조사결과와 수습책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만일 법원당국이 그 정도로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현직법관 9명을 비리관련 혐의로 중징계하고, 의정부지원 소속 법관 38명 전원을 교체키로 한 것은 우리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사문이나 다름 없던 법관 윤리강령에 실비 수수금지 등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법관 감찰기구를 설치하겠다는 등의 재발 방지책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여론은 만족하지 않고 있다.
의정부지원의 법관들까지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일부법관들은 조사결과 발표직후 업무를 중단하고 말없이 퇴근하는가 하면, 집단사직론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악덕 변호사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정기적으로 뇌물을 받아 온 동료들이 조사대상에서 빠졌고, 비리 정도가 가벼운 소장법관들이 희생양이 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리법관들이 변호사들에게서 받은 돈의 액수도 훨씬 적게 발표됐다는 의혹을 받고있다.
양심적인 다수 법관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무더기 교체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도매금으로 인사이동을 당함으로써 비리에 연루됐다는 오해를 받게 됐으니 목숨처럼 소중히 여겨 온 법관의 명예가 어떻게 되겠는가.
조사 타이밍과 방법에도 잘못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이번 사건의 발단인 이순호 변호사의 불법 수임사건이 터져 법관들의 비리의혹이 제기됐는데도 법원당국은 모른 체해 왔다. 문제가 커지자 마지못해 조사에 착수했으나 형식적인 조사로 핵심을 비켜갔다. 법원 당국자도 시인했듯이 대면조사는 일부에 국한됐고, 일방적일 수밖에 없는 서면조사로 대신한 경우도 있었다. 조사내용도 검찰이 확보하고 있는 계좌자료를 근거로 진상을 밝히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변호사와의 금전거래와 실비문제에 국한됐다는 내부비판이 일고 있다.
이런 여러가지 이유를 들어 변협은 법원당국의 조치가 크게 미흡하다는 공식반응을 보이고 있고, 「판사비리 공동대책위」는 조사대상에서 빠졌거나 혐의가 축소된 법관들을 검찰에 고발하겠다고 나섰다. 고발이 들어오면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기피할 수 없게 된다. 이런 타율적인 강제수사보다는 법원의 의뢰에 의한 수사가 훨씬 바람직한 수습책이 될 것이다.
뇌물 받은 법관을 사법적으로 처벌함으로써 실추된 사법부 신뢰가 회복되지 못하면 국민은 법원의 판결에 승복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결국 법의식과 법감정의 혼란을 초래해 국민정서에 심각한 해악을 끼칠 것이다. 액수가 적다거나, 지금까지의 관행이었다거나, 조건없이 빌린 돈을 갚았을 뿐이라는 등의 변명이 통할 순 없다. 법원당국의 현명한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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