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구조조정 겹쳐/담합수준 공동보조 강화/책임회피·관치금융 등/부작용 우려도 높아/기업들도 “불공정” 불만 경제계에 「은행 카르텔」이라는 새로운 공룡이 등장하고 있다. 협조융자나 화의를 신청하는 기업들이 늘면서 부상하기 시작한 은행권의 카르텔화는 재벌구조조정과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최근 급속히 강화되고 있다. 은행권은 이제 각종 공식 비공식 모임을 통해 공동 의사결정과 집행체제의 틀을 갖추면서 막강한 파워를 축적해가고 있다.
은행이 다음달말까지 대기업들과 맺게 될 재무구조개선협정의 경우 협정체결대상은 주거래은행이지만 사실상 채권금융기관 전체가 자료를 공유하고 보조를 맞추도록 돼 있다. 협정 제 10조는 「은행(주거래은행)이 이 약정내용 및 이행경과 등을 주요 채권은행에 통보하는데 (기업은)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한다」고 규정, 공동보조를 명문화했다.
은행들은 기업들이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부동산을 매각하는 과정에도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최근 은행권이 마련한 「법인 재무구조개선에 관한 공동업무 처리기준」에 따르면 채권액의 합계가 65%이상을 차지하는 은행들로 금융기관협의회를 구성하도록 했다. 이 가운데 과반수가 동의하고 부동산 매각후 확인서를 공동명의로 발급해줘야 기업들은 특별부가세(양도세) 면제를 받을 수 있다.
기업문제 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은행권의 카르텔화는 현실화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은 일제히 리스자금 대출이자를 대출중도에 인상하기로 하고 개별리스회사들에 이를 강요하고 있다. 여·수신관련 업무에 있어서도 은행들은 「담합」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은행장회의를 비롯, 임원회의 실무자회의 등 은행간 직급별회의가 눈에 띄게 잦아진 것도 은행권의 카르텔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불가피한 측면이 없지 않다. 한 은행관계자는 『한 기업에 돈을 꿔준 금융기관이 수십개에 달하는 상황에서는 협조융자 등에 대해 채권은행간의 공동협의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은행간 유착이 고정화하는데 따른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IMF 체제는 오히려 금융권의 경쟁이 강조돼야 할 상황』이라며 『은행권의 카르텔화는 책임경영이나 주주의 권익보호라는 관점에서 은행의 경영자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물론 산업구조조정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카르텔화하는 은행을 상대해야 하는 기업의 불만도 만만찮다. 기업들은 『개별 기업이 은행권전체를 상대로 공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S은행 임원도 『현 상황에서는 은행권의 공동행동이 자칫 책임회피나 효율적인 관치금융의 수단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며 『은행의 책임경영체제확립과 심사능력강화 등 부작용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김준형 기자>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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