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식구가 찬 없는 내 밥상을 차리고는 마음 아파하는 꼴 보기 마음 아프이. 나야 반찬타령 할 처지가 아님을 자네도 알 것 아닌가. 그래서 집앞 개울에서 물고기라도 잡아 그들을 달래고자 하는데, 반두(그물의 한가지)가 있어야지. 베도 없고 말일세. 하니 베 좀 보내 주게나. 짜투리라도 좋으니』 이건 남명 조식이 그의 벗에게 보낸 편지의 한토막. 선비정신이 구슬이듯, 환하다.
『자네가 영의정이 되고 보니 어째 편지 쓰기가 그 전과 달라서 마음 편치않네. 자넨 이제 거목일세. 한데 나무가 클수록 넝쿨이 덕지덕지 엉겨붙기 마련, 그러다가 넝쿨은 나무를 삼키기도 한다네. 조심하게나』
이건 남명이 죽마고우 이준경에게 보낸 편지의 한 토막. 역시 선비정신이 옥같이 밝다.
앞의 편지는 선비의 청빈으로 빛이 나고 뒤의 편지는 선비의 처사정신으로 빛나고 있다. 왕의 청함을 받고도 굳이 야인의 학자로 머물기로 한 남명은 예나 지금이나 처사 아니면 징사의 사표다.
정치권력에서 멀어져 있음으로써 누리는 자유, 그리고 그 자유가 보장할 의로움은 선비의 기상이요 긍지였다. 황금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극기와 절제, 그리고 그것들이 보장할 염결은 선비의 지조요 긍지였다. 학문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특전이요 보람있는 향유라는 것을 선비들은, 옛 학자들은 믿고 있었고 또 그 믿음을 실천했다.
한데도 오늘의 선비거나 아니면 최소한 학자이어야 할, 당대의 일부 교수집단은 정치권력 앞에서 구걸꾼에 지나지 못했다. 그나마 국민의 적이다시피 한, 암흑의 정치권력 앞에서조차 그들은 각설이타령을 읊어댔다. 다른 직업 내지 직능집단에 비해서 그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다.
일부 교수사회의 부분적 타락은 이들에 의해서 이미 시작되었다. 그들에겐 「지성」이란 말이 결코 영예로운 게 못되었다. 그들에겐 자신의 직업에 대한 긍지는 미진만큼도 없었다. 당대에 우리 사회의 최후의 소금이어야 할, 교수사회의 부패에 그들이 앞장섰다.
그러다가 이젠 돈 가지고도 썩기 시작했다. 비록 일부지만 그들은 매직하고 매업했다. 그것은 더러운 밀매였다. 사창가의 그것보다 나을게 없는 흉악한, 추악한 암거래였다.
일부 법관의 변호사와의 돈거래도 이들에 비하면 그래도 변명의 여지가 크다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이나 공권력일수록 애시당초 황금과의 교환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다같이 한 사회의 소금일 수 있다지만 법관의 소금기, 곧 「간」기운은 교수의 그것보다야 못하기 때문이다. 언제든 오염될 소성을 갖추고 있는 권력의 부패는 그저 그러려니 하는 사회집단의 슬픈 체념이나마 유발할 수 있지만 교수에게는 그럴 수도 없기 때문이다.
법관이 소금밭 가장자리에 있다면 교수는 염전 한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대학인임이 자랑스런 교수들은 그렇게 스스로 자부하고 있을줄 믿는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싶다.
권력 앞에서는 마음의 누더기 걸친 정신의 거지 꼴이더니, 이제 황금 앞에서 마피아같은 밀매꾼이 되었다. 직업의 밀렵꾼이요 소매치기가 되었다. 도둑 치고도 말자와 악종이다.
선비를 두고 이야기될 우리의 정신사 내지 지성사로 말해도 그들은 배교자요 배신자다. 그점은 서구의 정신사에 비추어서도 다를 바 없다. 실제로 계몽주의 이후, 지성은 신이 차지했던 바로 그 권좌에 앉았다. 인간 및 역사의 진보며 향상과 동의어인 「문명」의 최대 동력구실을 도맡아 낸 것도 지성이다. 현실적으로는 그 한 손에 진리를, 다른 한 손에 비판을 움켜쥔 것이 다름아닌 서구 근대의 지성이었다. 이에 비추어보아도 밀매꾼 교수들이 사교도란 것은 분명하다.
구시대 권력의 거지교수들은 웬만큼 이제 사라져 갔다. 제발 밀매꾼 교수들은 스스로 이제 물러가 주기 바란다. 그들은 차마 있지 못할 자리에 너무나 오래 있었기 때문이다.<국문학>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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