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교수 경조사 챙기기·접대에 수천만원/박사과정은 ‘머슴살이’/연구비 프로젝트예산 60∼70% 교수몫/1,000만원 넘는 악기구입 리베이트 허다/의·약대선 업계와 ‘랜딩비’ 검은 결탁 서울대 치대 교수임용 비리를 지켜본 한 원로교수는 『새삼스럽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은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학문이라는 외피를 보호막 삼아 그동안 만연해 온 대학사회의 고질이 곪아 일부 터져나온 것일 뿐』이라며 『대학 비리는 몇몇 교수나 일부 사학 차원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관행이며 구조적 문제』라고 탄식했다. 이 원로교수의 비판은 대학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교수들의 독직실태를 들여다보면 결코 과장이나 자학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연구비·프로젝트예산 전용
교수 독직비리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연구비 전용이다. 이는 정부기관이나 기업체 등이 발주한 연구프로젝트 예산을 교수가 착복하는 것으로 공대나 자연대, 농대 등 이공계통 대학에서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예산 전용의 전형적인 방법은 예산서 조작으로 연구계획서에 따른 예산안과 실행계획서의 항목별 예산을 과다계상하거나 허위항목을 삽입하는 것이다.
서울 S대 공대 대학원을 96년 졸업한 김모(29)씨는 『프로젝트 실행예산의 60∼70%는 교수 개인의 몫』이라고 털어 놓았다. 김씨가 지난해 참여한 정보통신부 발주 이동통신 관련논문 프로젝트(2,000만원)의 예를 보자. 이 프로젝트에는 교수 1인에 석·박사 각 1명씩이 참여했으나 예산안에는 교수외에 4명의 연구진이 참여한 것으로 조작됐다. 실제 김씨가 10개월간 받은 돈은 월 17만원으로 박사인 선배가 받은 월 30만원을 합쳐 470만원이었다. 그러나 예산서에는 이 프로젝트의 인건비가 1,000만원으로 계상됐다. 김씨는 『장비구입이나 물품소요가 적은 프로젝트의 경우 인건비가 가장 손쉬운 조작 항목』이라며 『연구원 수를 2∼3배 불리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서울 K대 자연대 대학원생인 정모(27)씨는 『발주기관 등의 감사와 지출내역 보고를 위해 출장비나 세미나경비 등의 명목으로 100만∼200만원대의 가짜 영수증을 두차례 만들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출장품의서에 가짜서명을 하기도 했지만 감사에서 적발된 예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같은 비리 관행의 이면에는 학위를 얻기 위한 석·박사과정 연구원과 동료교수, 연구소측의 묵시적 동의가 필수적이며, 일부의 경우 비리커넥션을 형성하기도 한다. 최근 지방 C대 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김모(32)씨는 『석사 10명에 박사 2명이 있는 우리 랩(연구소·Laboratory)의 경우 프로젝트를 공동 수주해 나눠먹기식으로 분배하는 게 당연시돼 있다』고 말했다.
◆박사학위는 「노예학위」
비리커넥션에 석·박사과정 학생들을 엮어 놓는 수단은 학위와 취업·유학혜택 등이다. 학생들은 학위를 따내기 위해 거의 「몸종」같은 생활을 강요당한다. 공부나 연구보다는 지도교수의 환심을 사기 위해 갖은 심부름과 접대는 물론 집안의 경조사까지 챙겨야 한다.
올해 초 지방 C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박모(33)씨는 『시집살이보다 더 힘들고 더러운 게 학위과정』이라며 박사학위를 「노예학위」라고 말했다.
박씨는 지난해 말 학위 종심(Final Defence)을 마친 뒤 5명의 심사위원에게 식대와 술값 등으로 1,000만원 이상의 접대비를 썼다. 하지만 그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보다 「이젠 끝났다」는 후련함이 더 컸다고 했다. 박씨는 『그동안 지도교수 집안의 경조사 챙기기와 각종 향응 접대, 휴가 스케줄 잡기, 국내·외 학회등 출장 수행 등에 3,000만∼4,000만원은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는 『교수의 눈 밖에 나면 학위는 커녕 취업이나 유학마저 곤란하기 때문에 불평 한마디 못하고 노력봉사와 인간적 수모를 참아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박사학위를 따는 데 들어가는 이같은 돈은 의대나 치대, 예·체능계 등의 경우 억대를 넘는다. 지난해 서울 J대 의대에서 박사를 받은 조모(35)씨는 『개업의들이 전문의를 따기 위해 박사과정에 들어와 막대한 돈을 퍼부어 물을 흐려놓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업계와의 검은 결탁
의·약대 교수들의 비리는 「랜딩비」 등 제약업체와의 검은 결탁으로 이어진다. 수년 전 대형 종합병원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사례가 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주변의 공통된 지적이다. 랜딩비는 신약품을 개발한 제약업체가 자기 약품을 납품하는 조건으로 상납하는 사례비. 영업사원이 담당과장 등 책임자를 만나 수량당 가격을 정한 뒤 병원측이 해당 약품을 주문하면 돈을 건네준다.
K제약 병원영업팀에 근무하는 주모(35) 과장은 『최근 개발한 안과용 약품 200상자를 모대학병원에 납품키로 하고 상자당 2만5,000원의 리베이트를 주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의국(병동)회식 등 모임이 있으면 끝날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렸다가 비용을 결제하는 것도 관례』라며 『그러한 모임에 「초청」받은 사람은 제약세일즈를 성공적으로 하는 셈이다』고 말했다.
30대 제약업체에서 대학병원 담당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올해 초 직장을 옮긴 장모(34)씨는 『교수들에게 지출하는 경비는 모두 판촉비로 계상하는데 세금추적을 피하기 위해 경비지출 내역을 동료직원들끼리 쪼개기도 한다』며 『월 판촉비로 2,000만원까지 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매년 열리는 제약업계 후원 의학학회도 공개적인 비리잔치의 장. 후원업체들이 교통·체재비 등 모든 행사관련 비용을 부담하고 합법적인 약품판촉의 장으로 활용하므로 제약업체들로선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많은 교수들을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이 때문에 후원사 참가경쟁도 치열해 대개 20∼30개업체가 돌아가며 맡는다. 「실적」이 좋은 교수에게는 매년 봄·가을 두차례씩 외국학술대회에 참가하는 특전도 제공된다.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 열리는 학회의 경우 참가비와 체재비, 용돈 등을 포함해 최소 500만원에서 1,000만원 가량이 소요된다』며 『이들이 독립해 개인병원을 차릴 경우 에어컨이나 앰뷸런스 구입은 대개 제약회사의 몫』이라고 말했다.
◆과외·리베이트 관행
예·체능계 교수들의 고액 개인과외나 악기 등의 장비구입을 둘러싼 사례비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얼마전 개인교습을 한 대학교수 2명이 적발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다.
서울 S대 음대 기악과 김모교수는 『예술고 등에 초빙교수로 출강하는 일부 교수의 경우 학부모들이 찾아와 한 두차례 특별지도를 부탁하는데 매정하게 거절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며 『상당수 교수들이 부정기적으로 개인교습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개인교습을 받는 제자의 악기 구입을 알선하는 대가로 악기상으로부터 리베이트를 챙기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1,000만∼2,000만원대 관악기와 달리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의 경우 「쓸만한」 악기는 억대가 예사라는 것. 수입악기 전문업체인 C악기사 관계자는 『리베이트는 악기대금이 1억원 이상일 경우 가격의 10%, 미만일 경우 15%가 일반적』이라며 『구입한 쪽에서도 알선자에게 「좋은 악기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의미로 리베이트에 준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 또한 관행』이라고 말했다.
◎가짜박사 실태/남의 논문 짜깁기에/가짜학위 돈주고 구입/전국 100여명 추산
학위중심의 대학풍토는 「함량미달의 가짜박사」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권위있는 논문이나 외국의 유명학술지에 기고된 것을 짜깁기해 논문심사를 통과하거나, 외국의 엉터리 대학에서 돈과 바꾼 학위로 버젓이 강단에 서는 교수들이 적지 않다.
교육당국의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전국 대학에서 활동중인 가짜박사는 10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일부에서는 이 숫자가 600∼80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름도 생소한 「골든스테이트대」 「퍼시픽웨스턴대」 「사우스베일로대」 등이 가짜박사를 배출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학교. 이들은 미국 고등교육위원회로부터 공인받지 못해 미국 대학편람에도 등재돼 있지 않으며, 전교생이 200∼300명에 불과한 소규모 학교로 이 가운데 사우스베일로대는 박사과정이 5∼6년 전에 이미 폐지된 유명무실한 대학이다.
학위없이 교수로 재직하다가 이사장 총장 등의 요직이나 보직을 맡기 위해 엉터리 학위를 새로 사는 경우도 많다. 지방 T대 K교수는 90년 미국의 비공인대학 호놀룰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곧바로 단과대 학장을 역임했고, 지방 J대 H교수는 비공인대학인 사우스랜드대 철학박사 학위로 대학원장까지 역임했다. 이들은 『학위가 없어 보직을 맡기가 어려웠고 제자들의 논문을 심사하려니 체면이 서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들이 가짜학위를 따내기 위해 사용하는 수법은 한결같다. 먼저 전문브로커를 통해 정상적인 등록금의 세배이상되는 등록금과 수수료 등을 지불, 편법으로 입학한 뒤 졸업 때면 다시 수천만원의 돈을 들여 학위논문을 만든다. 논문은 한글로 대충 쓴 뒤 영어요약본만 제출하거나 아예 한글논문을 전문번역인에게 맡겨 영어로 제출해 학위를 받는다. 미국 대학교수를 국내로 초빙해 1년에 1∼2주 출장강의를 받고 학위를 취득하는 경우도 있다.
다른 사람의 논문에서 적당한 대목만 떼어내 만드는 짜깁기형 논문으로 학위를 받는 사례도 흔한 일이다. 이들 고객을 대상으로 대행업체들이 써 준 논문은 대부분 보름이면 완성된다. 실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한 전문대 출신자가 쓴 13편의 논문이 학위논문 심사에서 전혀 무리없이 통과된 적도 있다. 지도교수에게 이같은 짜깁기나 베끼기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상당한 돈을 제공하는 경우도 있다.
□특별취재반
사회부=이충재·최윤필·박일근·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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