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발전기금 명목 돈받고 미리 내정 형식적 채용공고/연구실적 없어도 “이사장 자녀” 이유 편법발탁도 대학이 휘청거리고 있다. IMF체제 이후 재정난에 허덕이는 대학이 서울대 치대교수 임용비리 사건으로 명예와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졌다. 환부는 교수임용만이 아니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연구보다는 지도교수의 잔심부름에 매달려야 하고 수시로 금품을 바치고 향응을 베풀어야 한다. 조금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투명하지 못한 학사행정 여기저기에 부정·비리가 기생하고 있다. 대학의 최고책임자이자 지성의 상징인 대학총장 선거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들은 우리 대학이 세계의 유수한 대학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교수사회의 고질적인 비리부터 척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교수사회의 대표적인 비리를 상·중·하 세차례에 나눠 심층 보도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교수임용을 둘러싼 비리는 생각보다 훨씬 뿌리깊고 심각하다. 국·공립대와 사립대, 명문대 비명문대를 가릴 것 없이 전국 대부분 대학에서 크고 작은 불법·부당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 사안의 특성상 외부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교수임용 비리는 이미 대학가에 관행이 돼 버렸다. 심각하고 두드러진 사례를 유형별로 나누어 알아본다.
◆금품수수
교수임용을 둘러싼 비리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유형. 이러한 비리는 비교적 재정자립도가 낮은 지방 신설대와 중소규모 대학, 전문대에서 많이 벌어지지만 대규모 종합대에서도 예·체능계 등을 중심으로 종종 일어난다.
최근 지방 모 사립대에 교수임용 지원을 했다 탈락한 김모(39·여)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 놓았다. 3∼4년전부터 이사장 아들이 중심이 돼 학교 인근에 아파트형 양로원 시설을 지어 교수 채용조건으로 시세보다 훨씬 높은 1억여원에 강매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작곡을 전공한 김씨는 『대부분의 교수임용 지원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사들인 뒤 4,000만∼5,000만원에 되팔고 있지만 이후에도 갖가지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 결국 도중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올해초 경기도의 한 사립대학 국문과 교수 임용공고를 보고 지원한 박사학위 소지자 이모(42)씨는 최근 자신이 탈락된 이유를 알고 분통을 터뜨렸다. 임용공고를 낼 당시 수억원의 학교발전기금을 낸 모씨가 이미 내정된 사실이 학교에서는 공공연히 알려져 있었는데도 꼭두각시 노릇을 한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교수로 임용된 사람의 장인은 서울 모대학 부총장으로 애당초 경쟁이 되지 않았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들어야 했다
학교 시설에 대한 투자나 기자재 구입 등 현물로 제공할 것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도의 한 사립대는 신규임용에 응시한 박사학위 소지자에게 『교내에 나무가 없어 조경이 초라하니 식수를 좀 부탁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처음에는 『얼마 들지 않겠지』하고 승낙했던 그는 학교측이 『교문에서 본관까지 양쪽으로 나무를 심는 게 좋겠다』는 말에 아연실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고민 끝에 주변에서 수천만원을 빌려 나무를 기증한 후 임용됐다.
금품수수에 대한 비난이 거세자 최근에는 일정기간이 무급으로 강의를 해줄 것을 요구하는 신종수법이 등장했다. 지방의 한 대학은 1학기에 임용된 교수 7명에게 6개월 봉급을 일부만 받거나 아예 받지 않는다는 각서를 요구, 교수들이 집단항의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총·학장, 재단의 전횡
친인척 관계나 학연, 지연 등을 매개로 특정인을 임용하거나 압력을 행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주로 교수임용 심사기준 가운데 연구실적, 경력 등 객관적 평가기준보다 면접에 과중한 배점을 주고, 인사위원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선정하는 수법으로 이뤄진다. 학과의 일부 교수와 담합을 통해 특정인의 점수를 높이거나 낮추는 방법도 사용된다.
경기도의 모 사립대에서는 이달 초 총장의 아들이 시스템공학과 교수에 임용된 것을 놓고 뒷말이 많다. 다른 학부 및 학과는 공개채용 심사를 거친데 반해 유독 이 학과만은 비공개경쟁을 통해 형식적인 절차만을 거쳐 임용했다는 주장이다. 이 과정에서 재단 관련 기술연구원 3명을 전임교원으로 옮기면서 자신의 아들을 슬며시 끼워 넣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서울 모 여대 K(여) 교수는 전형적인 인사청탁에 의한 발탁 케이스. 모 학교 재단이사장의 딸인 그는 강사나 연구업적이 전혀 없어 서류심사에서 지원자 12명중 최하위였는데도 재단측의 느닷없는 지시로 임용됐다는 것이다.
◆교수들의 자기사람 심기
교수임용에서 가장 뿌리깊고 광범위하게 자리잡은 병폐는 실력과 관계없이 「자기 제자」 「자기 사람」을 심는 파벌주의다. 이러한 유형은 오히려 규모가 큰 대학에서 공공연히 이뤄지며, 임용한 측이나 임용된 측 모두가 아무런 거리낌없이 오히려 이를 당연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공과 관계없는 학과에 임용돼 강의를 맡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실제 96년 교육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전국 115개 대학의 6만3,121개 강좌를 대상으로 교과목의 내용과 담당교수의 전공일치 여부를 조사한 결과, 70개 대학 3,896개 강좌가 일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초 서울 K대 의대 내분비내과 교수 임용에서 탈락한 R씨는 『C교수가 자기 사람을 뽑기 위해 지원을 포기하도록 종용했다』고 털어 놓았다. 94년 박사학위 취득 후 4년 교육경력을 갖춘 R씨는 교수의 만류에도 불과하고 서류를 제출했으나 탈락하고, 조건이 훨씬 못미치는 다른 사람이 임용됐다는 것.
모 교대 미술교육과에서는 전 학과장이 자기 제자를 임용하기 위해 다른 학과와는 달리 학위자격을 박사에서 석사로 낮추고, 이론과목인데도 현장경력을 우대하는 등 기준을 임의로 변경했다. 결국 이 문제가 불거져 아직 교수임용을 못하고 있다. 또한 이 대학 조소과에서는 예술관련 협회 이사장을 지낸 P교수가 전 학과장과 담합해 박사학위가 없는 자신의 제자를 임용하기 위해 외국연수 경력을 박사학위로 인정해주는 편법을 썼다. 임용된 교수는 이같은 의혹이 제기되자 현재 강의배정도 못 받고 있다.
지방 모 대학의 경우 3명의 전공교수 밖에 없는 이 학과의 한 원로교수가 본교출신의 자기 제자를 임용하기 위해 신임교수 임용내규를 악용, 말썽을 빚었다. 그 원로교수는 교수 정원이 5명 이내인 학과에서는 외부 심사위원 2명을 둔다는 임용규정을 이용해 외부 심사위원을 선정할 때 영향력을 발휘, 2명 모두를 자기세력 인사로 끌어들여 결국 자신의 제자를 임용하는데 성공했다.
◎임용비리 파수꾼 ‘교공임’/“상아탑 자정” 교수 500여명 활동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회장 박창고 강원대 교수)은 대학교수 임용비리의 파수꾼 역할을 하는 일종의 압력단체이다.
95년5월 상아탑의 명예와 자긍심을 지키자는 취지에서 결성된 이 모임에는 현재 80여개 대학 500여명의 교수가 활동하고 있다. 『뿌리깊은 대학사회의 부패를 척결하고 모든 교수임용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가 공정한 인사에 앞장설 것을 다짐하자』는 것이 구체적 결성동기다.
지금까지 교공임이 접수한 불공정 임용사례는 200여건. 재단 및 총·학장들의 전횡이나 부당한 개입, 인맥과 학맥에 따라 특정인을 끌어들이는 「자기사람 심기」가 대부분이다. 개인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금품이나 향응을 대가로 요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교공임은 접수된 불공정 임용 사례를 대학측에 공문을 보내 사실여부를 확인하며, 외국 전문기관이나 대학 등을 통해 학위 사실여부나 논문 표절문제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비리가 확인되면 교육부 감사원 검찰 등에 고발하고 1년에 한번씩 사례발표회를 갖는다.
박교수는 『불공정 임용을 한 대학측에 압력을 넣어 문제를 해결한 경우도 적지 않지만 「대학의 높은 벽」 때문에 한계를 느낄 때가 더 많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물증까지 확보한 뒤 검찰에 고소·고발을 해도 대학의 로비에 의해 거꾸로 제보자가 낭패를 보는 경우마저 있다는 것이다. 임용이 이미 결정된 뒤 제보가 들어오면 손을 쓰기 힘들고, 임용이 결정되기 전에 교공임이 개입하면 특정인이 혜택을 받아 또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교공임 장정현 간사는 『교수들의 자정의지만 있으면 임용비리는 쉽게 근절할 수 있다』면서 『전국 국공립 및 사립교수 협의회가 교공임의 취지를 공식 지지하는 등 동참을 원하는 교수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개선대책/심사과정 공개 등 투명성확보 급선무
교수임용비리를 막기 위한 방안의 핵심은 객관성과 투명성 확보다.
96년 40개 대학 320명의 교수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개선대책의 방향을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합리적인 교수임용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은 26.7%를 차지했다.
이러한 견해에 대해 교육부도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서울대 치대 교수임용비리 사건 이후 제도개선 작업을 벌이고 있는 교육부는 먼저 대학 스스로 인사관련 규정을 보완·정비하도록 요청했다. 교수임용시 심사위원 선정과 심사 절차 및 결과를 공개하고, 임용시 대학발전기금 등 기부행위를 금지하도록 명문화하라는 주문이다.
교육부가 구상중인 중장기대책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타교출신 임용비율을 재정지원과 연계한다는 내용. 이는 「교수 공정임용을 위한 모임」(교공임)과 전문가들이 주장해온 「동일대 출신 쿼터(Quarter)제」와 같은 맥락이다. 본교 또는 특정대학 출신 교수비율을 전체 임용인원의 30∼40%로 제한하자는 이 제도는 임용비리 중 가장 고질화한 「자기 인맥 심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자는 의도에서 제기돼 왔다.
전문가들은 교수임용 과정의 비리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한다. 한국교원대 이건만 교수는 『지금처럼 해당 학과가 주체가 되면 심사교수와 임용대상자간의 비리를 근절할 수 없다』며 『학문적 업적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구를 마련하거나 학회나 교수협의회 등의 평가가 반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관련, 교육부 산하에 법적 지위와 운영상 독립성이 보장되는 기구를 설치, 임용대상자가 불이익을 당했을 경우 재심을 청구해 공정성을 확보하자는 방안도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교수임용 응모기간을 외국처럼 3개월∼1년 정도로 늘리고, 최종후보자에게 연구발표 기회를 주며, 최종결과를 응모자 전원에게 통보해주는 등 모집과정 개선방안도 검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특별취재반
이충재·최윤필·박일근·김정곤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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